미국 16위 은행이었던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자금 위기 발발 이틀 만에 파산해 세계 금융권을 충격에 빠뜨린 가운데 한국투자증권 계열 한국투자저축은행의 유동성이 금융당국 목표치도 충족하지 못할 만큼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저축은행권은 은행권 대비 낮은 수준의 유동성 규제를 적용받고 있는데 한투저축은행은 이마저도 지키지 못한 것이다. 한투저축은행 외에 키움과 애큐온, 하나, 신한 등 인지도가 높은 대형사도 유동성 비율이 100%를 간신히 넘는 상황이다. SVB처럼 ‘뱅크런’(예금이 한꺼번에 인출되는 현상)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유동성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일고 있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한투저축은행의 유동성 비율은 93%로 금융당국 규제 목표치인 100%를 밑돌았다. 유동성 비율이란 3개월 안에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을 같은 기간 갚아야 하는 부채로 나눈 값이다. 쉽게 말해 고객 예적금을 포함해 3개월 안에 만기가 돌아오는 부채를 모두 갚을 수 있을 만큼 현금을 쌓아두라는 얘기다.
4년 전인 2019년 9월 말 112%였던 한투저축은행의 유동성 비율은 이듬해 9월 말 132%, 2021년 114%로 3년 연속 최소한의 안전지대로 여겨지는 110% 선을 웃돌았지만 지난해 규제 목표치 아래로 고꾸라졌다.
한투저축은행 이외에 키움Yes(103%) 키움(106%) OSB(107%) 애큐온(108%) 하나·신한저축은행(각 109%)도 유동성 비율이 110%를 밑돌았다.
문제는 저축은행권에 적용되는 이 유동성 비율이 최소한의 규제라는 점이다. 당장 현금화할 수 있는 고유동성 자산을 1개월간 빠져나갈 외화 자산만큼 쌓아두도록 하는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과 이용 가능한 자금을 필요 자금보다 많이 확보하도록 하는 ‘순안정자금조달비율(NSFR)’ 규제를 시중은행은 받지만 저축은행은 받지 않는다.
SVB도 국내 저축은행처럼 대형 은행 대비 낮은 수준의 규제를 적용받고 있었다. 금융권에 따르면 SVB는 단기로 조달한 도매자금(short-term wholesale funding)이 500억 달러(약 65조2000억원)를 넘지 않아 미국 내 LCR·NSFR 규제 적용대상에서 빠져 있었다.
금융권은 국내 저축은행권을 우려 섞인 시선으로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 관계자는 “SVB와 국내 저축은행 규제 수준이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면서 “국내 저축은행은 SVB처럼 정보기술(IT) 스타트업에 큰돈을 빌려주지 않아 영업 구조는 다르지만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험 때문에 금융권에서 가장 약한 연결고리로 여겨지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유동성 비율이 100%를 밑돈 한투저축은행에 대해 현재까지 별도의 조치는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담당 부서에서 확인 후 조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