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철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이 6년 만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다시 한번 고배를 마셨다. 첫 경기 호주전 패배의 여파를 결국 극복하지 못한 채 3회 연속 조별 라운드 탈락의 수모를 당했다.
한국은 13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WBC 본선 1라운드 B조 중국과의 경기에서 22대 2, 5회 콜드게임 승을 거뒀다. 박건우·김하성이 나란히 만루포를 날렸고 이정후도 2안타 1볼넷으로 4타점을 올렸다. 한국은 역대 WBC 한 경기 최다 득점 및 최다 점수 차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뒤늦은 분풀이에 불과했다. 앞서 열린 낮 경기에서 호주가 체코를 8대 3으로 완파하며 3승 1패, 조 2위로 8강행을 확정지었기 때문이다. 호주가 조별 라운드에서 탈락하지 않고 상위 토너먼트에 진출한 것은 WBC 사상 처음이었다.
호주의 승리는 곧 한국의 탈락을 뜻했다. 2013년 3회 대회 이후 3연속 WBC 조별 라운드 탈락이다.
이날 전까지 한국 대표팀이 보여준 경기력은 팬들의 눈높이에 한참 못 미쳤다.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세계랭킹 4위이자 올림픽 우승·WBC 준우승 경험국이란 이름값에도 턱없이 모자랐다. ‘첫 단추’ 호주전과 숙명의 한·일전에선 마운드가 바닥까지 붕괴했고 체코전에선 타선이 초반의 기세를 이어가지 못한 데다가 수비 실수까지 겹쳤다.
이번 대회로 한국 야구의 참패는 더 이상 이변이 아니게 됐다. 특히 일부 투수들은 반드시 스트라이크를 집어넣어야 하는 상황에서 존 안에 공을 못 집어넣었다. 이들이 리그를 호령하며 이번 대표팀에 발탁됐다는 사실은 새삼 한국 프로야구의 현주소를 보여줬다. 덩치만 커졌지, 질적인 성장은 뒷전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한 수 아래로 얕봤던 상대들은 그동안 큰 폭의 성장을 이뤄냈다. 호주 마운드엔 강속구 투수들이 포진했고, 사회인이 대거 포함된 체코 타선은 이들을 맞아 대등하게 싸웠다.
이강철 감독 이하 코치진도 조기 탈락 책임론을 피할 순 없다. 앞선 세 경기에선 허를 찌르는 작전이나 흐름을 끊는 반 박자 빠른 투수교체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결과론적인 면도 있지만 당장의 컨디션보다 이름값을 앞세웠던 선수 기용도 실패로 돌아갔다.
‘도쿄 참사’의 원인은 명백했다.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못해서’ 졌다는 것이다. 최근 수년간 이어져 온 국제무대 부진이 사실은 실력 부족 때문이었다는 게 다시 입증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한국에 계신 국민과 팬분들께 진심으로 죄송하다. 정말 선수들은 준비를 잘했고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준비해 왔다”며 “내가 좀 부족해서 결과가 이렇게 나온 것 같은데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정후는 “저희 기량이 아직 세계 많은 선수에 비해 떨어진다는 걸 느낄 수 있는 대회였다”며 “좌절하지 않고 앞으로 더 발전하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도쿄=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