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美·中 중동 패권 경쟁에 치밀한 외교력 발휘해야

입력 2023-03-14 04:03
지난 10일 중국 베이징에서 왕이(가운데)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무사드 빈 모하메드 알아이반(왼쪽) 사우디아라비아 국가안보보좌관, 알리 샴카니 이란 국가안전보장위원회 위원장과 함께 사우디-이란 간 외교 정상화 합의를 기념하는 사진을 찍고 있다. AP연합뉴스

중동 앙숙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지난 10일 관계 정상화에 전격 합의한 것보다 세계를 더 놀라게 한 것은 중국의 중재였다.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이 확정된 전국인민대표대회에 맞춰 중국 베이징에서 양국의 화해를 이끌어내 외교 영향력을 과시했다. 외신에 따르면 중국은 6개 아랍 산유국으로 구성된 걸프협력회의(GCC)와 이란 간 다자 정상회의도 올 연말 베이징에서 추진할 계획이다. 미국이 압도적 영향력을 행사해온 중동에서 미·중 간 경쟁이 본격화한 것이어서 한국의 치밀한 외교 전략이 더욱 중요해졌다.

이번 정상화는 미국이 전통 우방 사우디와 인권 문제로 옥신각신한 사이 중국이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만들었다. 외신에서 이번 합의에 대해 “조 바이든 정부의 외교적 실패”라고 평가해 미국 대응도 어떤 식이든 나올 것이다. 대중동 영향력 강화를 위한 주요 2개국(G2) 경쟁은 그러나 우려 또한 작지 않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심화된 미·중 갈등으로 한국은 만만찮은 경제적 파장을 맞닥뜨렸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 비중이 40%가 넘는데 자유무역 기조 후퇴로 국가 경제 전반이 휘청거리고 있다. 무역적자는 25년 만에 12개월 연속 지속되고 있고 올해 성장률 전망치도 갈수록 하향 조정되는 추세다.

정부가 수출 부진에 대한 타개책으로 꼽은 게 ‘제2의 중동붐’이었다. 정상외교 등을 통해 사우디와 약 40조원, 아랍에미리트(UAE)와 37조원가량의 투자 협약을 맺으면서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이 중동에서 파워 게임을 벌일 경우 미국과의 가치 동맹에 묶인 한국에 불똥이 튈 수도 있다. 중동 국가들이 친중으로 돌아선다면 양해각서(MOU) 수준인 투자 협력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에서 보듯 미국은 동맹을 위하는 듯하다가도 결정적일 때 철저한 자국이기주의 속성을 보여 마냥 미국의 선의에 기댈 수도 없다. 냉혹한 국제 현실을 헤쳐나갈 수 있는 외교력이 절실해지는 이유다. 민관이 한팀이 돼 어떤 국제 질서 변화 속에서도 중동이 ‘메이드인 코리아’를 외면할 수 없도록 선제적이고 구조적인 대응에 나서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