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가총액 1위 애플은 지난해 10월 27일 이사회를 열고 배당액을 결정했다. 그해 11월 7일 이전까지 주식을 취득한 주주들에게 같은 달 10일 배당금을 나눠줬다.
글로벌 시총 3위인 마이크로소프트(MS)도 비슷한 방식이다. 지난해 9월 19일 이사회에서 얼마를 배당할지 금액을 결의하고 배당기준일을 두 달 뒤인 11월 17일로 잡았다. ‘두 달 이내 MS 주식을 사면 배당을 주겠다’는 걸 대외적으로 알린 셈이다. 배당금은 그해 12월 8일 주주들 계좌에 입금됐다. 프랑스와 유럽에서 시총 1위를 달리는 LVMH는 지난해 4월 21일 주주총회에서 배당액을 정하고 닷새 뒤를 배당기준일로 설정했다. 배당기준일로부터 이틀 뒤 바로 배당금을 지급했다.
배당액을 결정하는 주체가 이사회냐 주총이냐의 차이는 있지만, 세 기업의 공통점은 주주에게 줄 배당액을 먼저 확정해 공표하고 나서 배당기준일을 정한다는 것이다. 배당액을 보고 투자를 결정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기업은 투자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배당성향을 높이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기업이 배당액을 꾸준히 늘리면, 단기 매매차익을 노리기보다 배당을 목적으로 장기 투자를 하는 투자자가 증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국은 정반대다. 자본시장법은 배당기준일을 먼저 지정하고 추후 배당액을 확정하도록 규정한다. 때문에 배당 여부나 배당액이 얼마인지 모른 채 평소 배당성향이 높은 편이거나 배당 가능성 있는 상장사에 ‘단기 베팅’하는 수준에 그친다. 한국과 비슷하게 관행적으로 결산기말일을 배당기준일로 정하는 나라는 일본이다.
그러나 한국의 주요 대기업이 선진국처럼 배당액을 알고 투자할 수 있도록 앞다퉈 정관을 변경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지난 2월 말 내놓은 배당 절차 개선방안에 화답하는 모양새다. 분위기를 이끄는 건 현대자동차그룹이다. 13일 재계에 따르면 현대로템을 제외한 현대차그룹의 11개 상장 계열사가 이번 주총에서 결산배당기준일을 이사회 결의로 정하는 안건을 처리할 예정이다. 포스코·SK그룹의 일부 계열사도 ‘깜깜이 배당’ 철폐에 동참 중이다. 삼성·한화그룹은 금융 계열사부터 배당 절차 개선에 나섰다. 금융당국은 내년부터 기업지배구조보고서를 통해 배당 절차 개선 여부를 반드시 공시하도록 할 계획이다.
김혜원 기자 ki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