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놈놈놈)을 오래전 봤었다. 도원(정우성 분), 창이(이병헌 분), 태구(송강호 분)가 각 부류의 놈이다. 일제 치하 만주에서 독립군과 친일파의 의뢰를 각각 받은 현상금 사냥꾼 도원과 마적단 두목 창이가 같은 열차에 오른다. 찾던 보물지도는 얼떨결에 열차털이범 태구가 차지한다. 도원은 현상범 창이를, 창이는 태구를 쫓는다. 추격전 끝에 다다른 곳은 아뿔싸 유전이다. 보물은 포기하고 다른 돈을 걸고 결투한다. 도원이 이겼고 둘은 총상으로 죽는다. 이어진 유쾌한 반전.
서부영화 ‘석양의 무법자’(The Good, The Bad, and The Ugly)와 많이 겹쳤던 세 놈놈놈을 당시 분별해봤다. 창이는 보자마자 나빴다. 잔인하고 선악 개념이 없다. 겉의 소세계에서는 오만함 자체였으나 안으로는 열등감이 극에 달했다. 태구는 이상했다. 모자란 듯하나 거짓말에 능하다. 뭐든 위장하는 교활함에 잡초 같은 생명력과 엄청난 물욕을 지녔다. 수치감은 애써 외면했다. 간혹 튀어나와 부끄럽게 만드는 내 모습 일단의 증폭된 버전이랄까.
하지만 도원은 왜 좋나? 늘 돈을 좇았다. 창이를 쓰러뜨렸지만 의로움 때문이 아니었다. 일본군도 무찔렀으나 그건 창이와 태구도 그랬다. 애초 독립군의 의뢰를 받아서? 그러나 태구와도 협업했고 의인하고만 일하진 않았다. 선한 티를 풍기나 가끔 그러할 뿐이다. 좋음의 캐릭터를 결국 규정하기 어려워 ‘다른 둘보다는 호감’ 정도로 정리했었다. 하기야 더 구분한들 뭣하겠나. 일급 액션, 특유의 익살, 너른 황야에 흠뻑 빠지는데.
이태원 참사. 예방 불능, 법적 책임 우선, 골든타임 종료 같은 정부 궤변에 몇 달 먹먹했다. 땜질 개입만 하다 스스로 다급해지니 은행만 옥죄는 행태까지 보며 놈놈놈 영화가 떠올랐다. 주말에 석양의 무법자도 다시 봤다. 블론디(Good)는 투코(Ugly) 같은 현상범들 사냥꾼이다. 엔젤 아이즈(Bad)는 청부살인을 하다 돈주머니 존재를 듣는다. 돈 묻힌 장소에서 결국 셋은 결투한다. 엔젤 아이즈는 가학적 빌런이다. 투코는 게걸스럽고 비루하다. 그저 현상범만 쫓는 블론디는 간간이 주위에 베풀지만 투코와도 협업한다. 역시 플롯, 영상, 모리코네 음악이 압권이다.
영화가 의도했던 ‘좋음’이 더 이해된다. 의뢰받은 일 잘 완수하고 약속된 보상을 받는! 이태원 참사는 그런 정도의 공복도 귀함을 입증했다. 늑장 도착하고, 비상보고 놓치고, 관용차 고집하고, 조작도 했다. 의뢰인에게 도원과 블론디가 했듯이 주인 위해 적시에 달려와 용쓴 고위 공복은 그날 없었다. 국무총리 고백처럼 국가는 없었다. 난방비 폭탄도 제때 대비했더라면 고통을 줄였을 것이다. 자영업자 폐업은 악화일로다. 바이 아메리칸, 인플레감축법, 칩스법 관련한 조 바이든의 의회 연설은 듣기 언짢으나 몹시 위협적이었다. 폭탄들이 이리 즐비하지만 발 벗고 뛰면 지금 구축 가능한 방화벽들도 있다.
영화 속의 공복 막시무스, 토루크 막토, 매버릭은 영웅이었다. 현실에선 기본 도리는 지키며 국민에게 열심이면 좋은 공복이다. 실상인즉, 굼뜨다 탈이 나면 조삼모사의 발뺌을 곧잘 한다. 급조된 만큼 은행 개입도 언제든 뒤집힐 테다. 공복에 대한 자국민 신뢰는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꼴찌권이다. 그런 이들이 중앙정부에서만 국내총생산(GDP)의 30%인 640조원을 집행한다. 거기에 국회의 공복 300명도 또 채워야 한다. 공천을 미끼로 벌써 악다구니고, 비굴하게 줄을 선다. 삶이 고달파도 이번엔 주인이 바짝 챙기자. 창이들은 필히 거르고 태구들은 솎아내자. 재감상 사족. 저런 열연으로 이제 최고 반열에 오른 세 주인공에게 박수를 보낸다.
김일중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