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시장의 고객 연령대가 갈수록 낮아지는 상황에서 교육부가 영·유아 사교육비 문제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부모들은 유아 대상 영어학원(영어 유치원)이나 공부방, 태권도 학원 등으로 ‘학원 뺑뺑이’를 돌리고 있지만, 정부는 관련 통계조차 작성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통계가 없고 실태 파악도 제대로 안 된 상태라 대책도, 담당 부서도 모호한 실정이다.
교육부는 올해 상반기 중으로 사교육 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지난해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26조원)이 역대 최고점을 찍는 등 사교육이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자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영·유아 사교육 대책은 불분명한 상태다. 교육부 관계자는 12일 “통계가 있는 초·중·고 중심으로 대책을 수립한다. 영·유아 사교육은 실태 파악이 안 돼 있다”며 “(상반기 나오는 사교육 대책에서) 영·유아 포함 여부는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매년 발표되는 사교육 통계에서도 영·유아 사교육비는 빠져 있다. 의무교육 대상인 초등학생과 달리 미취학 아동은 유치원과 어린이집, 가정 보육 등으로 흩어져 있어 조사하기 어렵다는 게 교육부 설명이다. 정부는 2017년 시범적으로 유아 사교육비 조사를 벌인 이후 현재까지 실태를 들여다보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유아 대상 영어학원의 경우 2017년 474곳에서 지난해 811곳으로 71.1%나 급증했다. 원아 수 감소로 사립유치원·어린이집 폐원이 줄을 잇는 것과 대조적이다.
영·유아 사교육 정책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사교육비 통계 조사는 디지털교육기획관 소속 교육데이터담당관이 담당한다. 디지털교육기획관은 인공지능 기반 디지털교과서 도입 등 교육정보기술 정책을 위해 신설된 조직이다. 교육통계 관리 업무가 있어 사교육비 조사만 한다.
상반기로 예고된 사교육 대책은 책임교육정책관 소속 기초학력진로교육과가 만들고 있다. 책임교육정책관은 초·중·고교 학교 정책을 관장하는 곳이다. 미취학 아동 정책은 교육복지돌봄지원관 소속 유아교육정책과 담당이다. 유치원 관련 정책을 다루지만, 유아 대상 영어학원 등은 학원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유아교육정책과 소관이 아니다.
학원 정책은 평생직업교육정책관 내 평생학습지원과가 맡고 있다. 하지만 영·유아 사교육 실태를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성인 대상 학원을 포함해 전반적인 학원 단속 업무를 맡은 곳이다. 미취학 아동과 관련해서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들이 유치원으로 홍보하거나 거짓·과장 광고로 학부모를 현혹하는지 등을 점검한다. 교육부 내에서 업무가 쪼개져 있어, 영·유아 사교육 대책 마련을 담당할 부서조차 모호한 것이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은 “학령인구 감소로 사교육 기관의 마케팅 대상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며 “현 정부는 출발선부터 국가가 책임지는 국가책임교육을 국정과제로 제시했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진단부터 제대로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