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경기지사 시절 비서실장을 지냈던 전형수씨가 지난 9일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뒤 민주당에서는 다시 ‘이 대표 책임론’이 고조되고 있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 무더기 반란표 사태로 벌어졌던 당 내홍이 겨우 봉합되는가 싶다가 다시금 첨예화되는 모습이다.
비명(비이재명)계에서는 “이 대표가 거취를 결단해야 할 시점”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대표가 연루된 의혹과 관련해 수사를 받던 측근이 숨졌으니 이 대표가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 비명계 중진의원은 1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본인 때문에 당의 부담이 커지는 데 대해 도의적·정치적 책임을 모두 져야 한다”며 “이 대표가 스스로 물러나는 형식을 취해야 한다. 더 늦어지면 대중이 당을 등질 텐데, 이는 총선에서 치명적”이라고 주장했다. 비명계 다른 중진의원도 “검찰의 표적수사라고 하는데 ‘표적수사 하지 말라’고 외치기보다 표적에서 피하는 방법도 있다”면서 “왜 자꾸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정권에 기를 쓰고 달려들어 표적이 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이 대표가 아니더라도 당을 이끌 사람은 있다”고 말했다.
윤영찬 의원은 지난 10일 페이스북에 “(이 대표가) 도의적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그게 인간이고, 그게 사람이다”라고 썼다. 김해영 전 의원도 12일 페이스북에서 “이 대표 같은 인물이 당대표라는 사실에 당원으로서 한없는 부끄러움과 참담함을 느낀다”며 “지금 같은 상황에서도 당이 이재명 방탄을 이어간다면 민주당은 그 명이 다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친명(친이재명)계는 전씨 사망의 원인을 검찰 수사로 돌리며 이 대표 책임론을 일축했다. 당 지도부 핵심 관계자는 “검찰이 아주 무도하고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국면에서 이런 불상사가 생겼다”며 “정적을 제거하려는 윤석열 독재 정권이나 검찰을 지적할 생각은 않고 입만 열면 대표를 공격하는데, 비명계가 사퇴를 주장할 거면 탈당부터 했으면 좋겠다”고 일갈했다.
이 대표 측 핵심 관계자도 “지금 이 대표가 민주당의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며 “검찰의 전방위적 공격을 이 대표가 막고 있어 민주당으로 파고가 넘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 측은 11일 정부의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을 규탄하는 장외집회에 이 대표가 참석한 것처럼 시민단체와 연계해 대정부 공세를 이어갈 방침이다. 민주당 주도로 ‘이재명 지키기’ 집회를 여는 게 아니라 시민단체와 함께 윤석열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며 지지세를 결집시키겠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경북 봉화의 양친 산소가 훼손된 사진을 올리며 “일종의 흑주술로 무덤의 혈을 막고 후손의 절멸과 패가망신을 저주하는 흉매라고 한다. 저로 인해 저승의 부모님까지 능욕당하시니 죄송할 따름”이라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전씨의 발인이 엄수된 날(11일) 이 대표가 정부 비판 집회에 참석한 것을 두고 날을 세웠다. 장동혁 원내대변인은 논평에서 “정치 이전에 먼저 인간이,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냐”며 “측근들에게 책임을 떠넘겨 희생을 강요해놓고 남겨진 유족의 상처까지 후벼 파며 조문할 때는 언제고 돌아서자마자 또다시 남 탓만 하는 것이 ‘이재명식 정치’냐”고 비판했다.
이동환 신용일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