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의 상속 지분을 둘러싼 법적 공방에 재계 안팎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창립 75년을 맞은 LG그룹에서 재산 분할분쟁이 일어나기는 처음이다. 특히 2018년 구 전 회장의 별세 이후 4년이 지난 시점에서 갑작스레 소송이 불거진 배경, 진행 과정 등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소송 결과에 따라 LG그룹 지배구조에 큰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12일 재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모친 김영식 여사와 여동생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구연수씨는 서울서부지법에 구 회장을 상대로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구 회장은 구 전 회장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큰아들이다. ‘장자(長子) 승계’ 원칙에 따라 지난 2004년 구 전 회장의 양자로 입적했다.
법조계는 김 여사 모녀가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제기한 지점에 주목한다. 구 회장의 상속자격 자체를 문제삼고 있어서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상속회복은 상속인을 참칭해 유산을 가져갔거나, 선순위 상속인이 뒤늦게 확인된 경우에 벌어지는 소송”이라며 “상속 비율이 문제라면 유류분(법적 상속 비율) 반환 소송을 제기할 텐데, 구 회장의 상속자격 자체를 다투는 건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구 회장은 구 전 회장의 별세 이후 지주회사인 ㈜LG 주식 11.28%(1945만8169주) 가운데 8.76%(1512만2169주)를 상속받아 대표이사 회장에 올랐다. 구 대표는 2.01%(346만4000주), 연수씨는 0.51%(87만2000주)를 분할 상속받았다. 김 여사는 1주도 받지 않았다. 유류분 기준에 따르면 구 전 회장 보유지분의 상속 비율은 ‘1.5(배우자) 대 1(자녀 1인당)’이다.
때문에 구 전 회장 별세 당시 구 회장과 김 여사 모녀 사이에 어떤 합의가 이뤄졌는지가 쟁점으로 떠오른다. 김 여사 측은 “상속 과정에서 여러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상속 재산 분할을 합의하면서 구 전 회장이 남긴 유언장이 있는 것으로 알았지만, 뒤늦게 유언장이 없다는 걸 알게 됐다는 입장이다.
반면 LG그룹 측은 “김 여사 모녀는 유언장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반박한다. 일부에선 상속회복청구 기간이 지난 상황에서 시효를 인정받으려는 시도로 보기도 한다. 상속회복청구는 ‘침해를 안 날’로부터 3년, ‘침해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10년 안에 행사해야 한다. 유류분 권리 행사는 피상속자의 사망 사실을 안 시점에서 1년 내 가능하다. 한 법조인은 “유류분 반환청구가 시효 문제에 막힌다면, 상속회복청구로 ‘침해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주장해 법적 판단을 받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여사 측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LG그룹 지분 구조에 변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유류분 기준으로 재산정하면 김 여사가 3.75%를 받고 구 회장과 구 대표, 연수씨가 각각 2.51%를 받게 된다. 구 회장의 ㈜LG 지분은 현재 15.95%에서 9.7%로 낮아진다. 김 여사는 지분 4.20%에서 7.95%로 뛰어 2대 주주로 오른다. 구 대표와 연수씨 지분도 각각 3.42%, 2.72%로 높아진다. 세 모녀의 지분을 합하면 14.09%로 구 회장 지분을 웃돌게 된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