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에 낀 한국경제… “對美 동조·對中 관계 속도조절 필요”

입력 2023-03-13 04:08 수정 2023-03-14 21:51

‘생존이 곧 전략’인 시대다. 한국이 세계 수출시장에서 점유율 기준으로 2017년 정점을 찍은 뒤 내리막길을 걷는 건 ‘외풍’을 견딜 수 있는 경제 체질로의 전환이 늦어지고 있어서다. 수출의 규모는 세계 6위권이지만 대외 변수에 취약하고 반도체, 자동차 등 특정품목 의존도가 높다. 전문가들은 올해 글로벌 경기 둔화, 반도체 가격 하락 등의 여파로 수출이 역성장한다고 관측한다. 국가 차원에서 체질 개선, 산업 경쟁력 강화, 첨단산업 육성 정책 추진 등이 시급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12일 국민일보가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의 수출입 동향 데이터를 기반으로 주요 20개국(G20) 회원국의 무역 의존도를 분석한 결과, 2021년 기준으로 한국의 무역 의존도는 69.58%에 달한다. 독일(72.26%)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2020년(59.59%)과 비교해 1년 만에 9.99% 포인트나 뛰었다. 무역 의존도는 수출입 총액을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눈 수치다. 내수시장이 상대적으로 탄탄한 미국 일본 등은 무역 의존도가 낮게는 10%대, 많아도 20%대에 그친다.


한국처럼 수출입에 기대는 정도가 큰 국가의 경제는 외부요인에 쉽게 흔들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원자재가격 폭등, 미·중 패권경쟁, 코로나19 팬데믹, 중국 국경 봉쇄, 일본 수출규제 등의 돌발 변수에 ‘민낯’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전 부처의 영업사원화’라는 구호와 함께 이례적으로 올해 수출 목표치(0.2% 증가)를 제시한 것은 수출 경쟁력 후퇴라는 위기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정부는 5개 품목(반도체, 석유제품, 석유화학, 자동차, 이차전지)이 수출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편식’을 극복하고 시장을 다변화하기 위해 원자력발전, 방위산업, 농수산물, 바이오헬스 등을 새로운 수출 주력품목으로 정하기도 했다.

기업들은 현재 시점에서 ①무역장벽, ②과잉 입법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미·중 갈등이 얼마나 깊어질지,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강대국이 무역장벽을 더 높일지는 결과에 따라 한국 수출에 막대한 파문을 던진다. 저성장 기조에서 자국 중심으로 공급망을 재편하려는 움직임은 한국을 ‘강대국 넛 크래커(호두까기 기계)’에 끼인 신세로 만든다. 한 반도체 회사 관계자는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은 자국 정치용이지만 한국 기업은 이미 미국과 중국에 투자를 많이 집행한 만큼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업을 원점에서 검토해야 할 수도 있는 큰 사안”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 흐름에 한국 정부와 기업이 동조하는 게 불가피하지만, 중국과의 관계도 적절하게 유지하는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진단한다.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미·중 갈등 국면에서 한국이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었지만, 지금 미국은 한국 기업에 아예 미국 본토로 들어오라고 한다. 이는 한국 정부나 기업의 이해관계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에 시장이 있고, 미국에 투자해도 되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한국과 중국에 시장이 있는 기업도 있다”면서 “거대한 중국시장을 포기할 수 없기에 EU 일본과 협력해 공동 대응에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도 “세계 시장에서 한국이 생존할 수 있는 키워드는 미국 중심 글로벌 가치사슬(GVC)에 편입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거대한 내수시장이자 제조업 기지인 중국과의 관계도 계속 유지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미국이 반도체 지원법에 독소조항을 넣어 과도한 경영 개입에 나서는 행위에는 한국 정부가 외교력을 총동원해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윤 대통령과 경제 사절단의 일본 방문을 앞두고 한·일 관계 개선이 이뤄지는 점은 긍정적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이지평 한국외대 융합일본지역학부 특임교수는 “반도체, 배터리 등 신기술 혁신에 한·미·일이 협력할 수 있다. 리튬이나 희토류 등 중국 의존도가 높은 자원의 개발에도 공동으로 나설 수 있게 될 것”이라며 “특히 수소 관련 특허가 많은 일본과 그린산업으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내적으로 기업 활동을 위축해 수출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걸림돌들을 해소해야 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국제 표준에 역행하면서 기업 경영을 옥죄는 과도한 규제가 대표적이다. 재계는 주 52시간 근로제, 파견 및 대체근로 불법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노동경직성을 강화하는 제도, 중대재해처벌법 등을 지목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전국의 50인 이상 1019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업들이 가장 부담을 느끼는 규제는 중대재해처벌법이었다.

또한 ‘포퓰리즘’ 성격을 띠고 있는 입법부의 과잉 입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정만기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은 “국회의 연평균 입법 건수는 20대 국회부터 2000건을 웃돈다. 이는 100건 안팎인 미국 영국 등에 비해 현저히 많다”면서 “특히 20~21대 국회에서 의원 발의 규제입법 건수는 5548건에 달했다”고 말했다.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에서 기업의 투자와 기술 개발을 지원할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건 모두에게 손해다. 반도체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를 확대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일명 K칩스법)은 지난해 8월에 발의됐지만, 해를 넘겨서도 제자리걸음이다.

김혜원 기자 kime@kmib.co.kr
김민영 기자 m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