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이 타결됐다. 합의에 앞서 피해 당사자는 물론 국민의 뜻을 묻지도 않았고 합의 내용을 공개하지도 않았다.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한·일 정상의 용기와 결단이라고 추켜세우며 한·미·일 협력이 더 강화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로부터 11개월 후인 2016년 11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이 체결됐다. 위안부 합의와 정보보호협정 체결 사이인 2016년 7월엔 사드 배치가 결정됐다. 위안부 합의는 끝이 아니라 한·미·일 삼각 협력 강화의 시작에 불과했다.
2016년 8월 미국 시사지 애틀랜틱에 당시 조 바이든 부통령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기사 제목은 ‘지정학의 치료사(Geopolitical Therapist)’였다. 바이든은 아베 신조 총리의 요청으로 자신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한·일 관계를 중재한 일화를 소개하며 “부부를 재결합시키는 이혼 상담사 같았다”고 술회했다. 한국과 일본이 결혼한 사이도 아니니 이혼 위기를 겪고 있는 부부에 비유한 것이 적절한지 모르겠다. 위기의 부부라면 5000년을 함께 살았지만 80여년간 분단된 남북에 더 적합한 표현인데 말이다.
2017년 3월엔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대통령도 없는 한국을 방문했다. 먼저 일본을 방문한 틸러슨은 합의 이행은 국제사회에 대한 책무라고 강조했다. 또 “한국의 대통령 선거 후 새로운 정권에 대해서도 계속 끈질기게 합의 이행을 촉구하고 싶다”며 위안부 합의 이행을 압박했다. 미 장관이 방한 직전 일본에서 하기엔 부적절한 발언이다. 한·미동맹과 미·일동맹 간 온도 차와 함께 미국이 공들여온 한·미·일 협력에 대한 우려와 조급증을 드러냈다. 한·일 관계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음모론에서 미국 스스로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 6일 정부는 강제징용 해법을 발표했다. 국민의 59%가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대법원 판결을 형해화하고 일본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한 굴욕 외교라는 평가가 대다수다. 제2의 을사늑약, 제2의 경술국치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미래지향적 결단이라는 말처럼 순수하게 역사 문제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한·일 관계를 열기 위함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기다렸다는 듯이 바이든 대통령은 한·일 관계의 ‘신기원적인 새 장’이라고 환영하면서 한·미·일 3국 관계 강화를 강조했다. 과거 위안부 합의 시절의 데자뷔처럼 느껴진다.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머지않아 한·일 간 상호군수지원협정(ACSA)을 체결하겠다고 할지도 모른다. 이미 ‘다케시마의 날’에 동해에서 한·미·일 해군 함정이 미사일 방어 훈련까지 했으니, 미·일 방위협력지침이 개정되고 바다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에서도 한·미·일이 군사훈련을 함께하는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미 대통령이 바뀌었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냉전 시기 소련을 위시한 공산권에 대항하기 위해 한·일 기본조약을 유도했던 때와도 다르지 않다. 이제는 중국 포위를 위해 주변국이 우려하는 일본의 재무장과 한·미·일 협력을 가로막는 과거사 문제라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한·미·일 삼각관계를 군사 분야까지 확장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바이든의 대중국 압박이란 꿈을 치밀하고 단계적으로 현실화시켜나가고 있다. 강제징용 해법이 일본에 백기투항한 것처럼 보이는 건 실제로는 우리가 미국만 쳐다보며 ‘올인’한 때문이다.
각 방 쓴지도 80여년이 돼가는 위기의 남북 관계 속에서 국익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일본에 대한 양보와 결단 그리고 한·미·일 군사협력 심화가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미래세대에게 전해줄 한반도 평화를 위한 양보와 결단은 일본이 아니라 북한에 먼저 보여야 한다. 그것이 한반도 평화의 치료사가 가져야 할 담대한 용기가 아닐까.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군사안보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