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욱의 슬기로운 금융] 금리 막으면 환율이 불안… 자칫 경제 전체를 망칠 수 있다

입력 2023-03-13 04:05

최근 경기와 관련해 노랜딩(no landing)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 적절한 번역이 없는데, 내용인즉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던 경기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물론 미국 이야기다. 부럽기만 한 이 말이 세계 금융시장에서는 좋게만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고물가 상태에서 경기가 좋다면 미국 연준이 정책금리를 계속 올릴 텐데, 금리 영향력이란 것이 처음에는 미약하지만 종내에는 창대해져 결국 경기가 급락(hard landing)할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지난 금요일 미국 금융시장을 뒤흔들었던 캘리포니아 지역은행 실리콘밸리뱅크(SVB)가 파산한 것도 고금리 때문이라고 수군대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와 반대다. 경기 둔화가 가시화되자 지난달 한국은행이 금리 인상을 멈춘 것이다. 한은 총재는 금리 인상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했지만, 누가 보더라도 물가보다 경기를 더 걱정하는 모양새다. 이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지만 시장은 국내 상황보다 세계 경제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덕분에 국내외 경제를 연결하는 환율이 중요한 지표로 떠올랐다. 앞으로 우리 경기와 물가가 어떻게 변화할지는 환율에 물어봐야 할 듯하다.

미국 경기 호조·고물가 동시에


요즘 미국에서 나오는 경제지표는 작년 말 예측과는 달리 호조세가 뚜렷하다. 우선 미국 경제의 70%를 차지하는 소비가 좋고, 고용이 최고 수준을 달리고 있다. 이를 반영한 듯 종합적 상황을 보여주는 국내총생산(GDP)이 작년 상반기에 바닥을 찍은 후 큰 폭의 플러스로 돌아섰다.

미국 경기는 왜 이렇게 좋은 것일까. 아마도 러시아 침략 전쟁의 덕을 보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다른 나라와는 달리 에너지 등 원자재 수급에 문제가 없는 데다 이들의 국제 가격이 오르니 앉아서 반사이익을 올리고 있다. 그렇지만 아마도 가장 큰 원인은 코로나 시기에 풀렸던 엄청난 돈(약 5조 달러, 6500조원)이 아닌가 싶다. 지난 1년간 정책금리를 4.75% 포인트나 올리고, 작년 9월부터는 매월 950억 달러(약 125조원)의 자금을 거둬들이고 있지만, 시중에는 아직도 막대한 유동성이 남아 있다.


그러니 물가상승세가 꺾이지 않는 것이다(소비자물가지수 12월 6.0%→1월 6.4%). 14일 발표될 2월 소비자물가지수(CPI)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만, 물가 향방의 키를 쥐고 있는 고용 상황이 좋아(지난 주말 발표된 비농업 일자리가 30만1000명 늘어 예상치 20만5000명 상회) 크게 떨어질 일은 없어 보인다. 이런 것을 보노라면 일부에서 연준이 정책금리를 6%까지 올릴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경기 둔화·고물가 겪어

미국이 금리를 올리니 여러 나라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세계적 경기 부진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우리 경제의 견인차인 수출이 저조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 원인이다. 지난달 무역수지가 12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최대 교역국인 중국의 코로나 봉쇄 해제에 기대를 걸어보지만 미·중 갈등 사이에 끼여 입맛만 다실 처지다. 더군다나 내수도 시원치 않다. 아파트 미분양은 10년래 최대치(7만5000가구)이고, 프로젝트파이낸싱(PF) 건설의 부실은 현재화하고 있다. 혹시나 금융 부실로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이런 상황이니 한은이 금리정책 기조를 바꾸는 것도 이해가 된다. 더구나 이제까지 기준금리를 올려도 정부가 예대금리차 축소를 압박해 실질적 효과를 잠식한 것에 짜증도 났을 것이다. 그래도 이번 조치로 물가 불안심리가 확산될 수도 있다는 점은 짚어봤어야 했다. 안 그래도 공공요금 인상이 불가피해 보여 기대물가상승률이 높아지는(12월 3.8%→2월 4.0%) 판국에 한은이 물가보다 경기를 챙기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환율이 중요… 움직임 예의주시해야


정부는 물가 불안과 경기 둔화를 동시에 막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공공요금 인상은 가급적 뒤로 미루고, 금융기관들에는 금리 인하를 요청하기 바쁘다. 지난주 금융감독원장은 금융소비자들이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을 당하고 있다면서 은행들에 금리를 낮춰줄 것을 당부했다. 정부의 이런 도덕적 권유(moral suasion)가 한국전력이나 은행엔 강압으로 받아들여지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세상에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은 없다고 했다. 가격을 통제해 물가지수를 낮추는 것은 신용카드로 빚잔치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고, 한쪽을 통제하면 다른 쪽으로 터져 나오기 마련인 것이다.

결국 금리를 붙잡으니 환율이 불안해졌다. 원·달러 환율이 지난 2월 초에 비해 벌써 100원 가까이 올랐다. 안 그래도 무역적자가 누적되고 있어 외환시장이 매우 민감해진 상황이다. 이럴 때 내외 금리차가 확대되면 환율이 강한 상승 압박을 받게 된다. 환율 상승은 수입물가에 그대로 전이되므로 결과적으로 전체 물가가 흔들린다. 더불어 높은 가격에 소비심리도 떨어지니 경기도 주춤해질 것이다. 환율이 불안해지면 경제 전체가 불안해지는 것이다. 앞으로 환율 움직임을 예의주시해야 할 이유다.

물론 환율이 오르면 수출을 진작시키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나 세계적으로 물가는 불안한데 경기 부진을 만회할 욕심으로 돈을 풀거나 금리를 낮춰서 경제가 망가진 예가 적지 않다. 고환율·고물가를 견디다 못해 자본이 이탈해 위기가 찾아오기도 한다. 작년 9월 말의 영국이 좋은 예다.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시방편이나 전시행정을 펴는 것은 결코 경제의 견실한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LUX경제그룹대표·경제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