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새라는 별명처럼 밝고 조잘대기 좋아하는 유쾌한 아이로 자랐다. 그런데 농사를 짓던 아버지가 술에 취해 밤새 가족을 괴롭히고 음주운전 사고를 내는 등 자주 문제를 일으키다 결국 알코올 중독으로 정신병동에 입원하셨다. 그런 어느 날 아버지와 어머니가 결혼한 후에 아버지가 입대를 했을 때 애틋한 사랑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충격적인 얘기를 어머니께 들었다. 그때부터 ‘사람의 마음은 변하는구나! 속지 말자, 남자! 속지 말자, 인간!’ 하며 혼자 살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런 내게 ‘영감’이라는 별명과는 달리 소년 같은 마음의 순정남이 다가왔다. 염려와 불안이 쌓였던 나는 간절한 사랑의 편지에도 ‘어떻게 그런 말을 쉽게 하시죠? 지금의 그 감정에 속지 않아요. 나는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 거예요’ 하며 퉁명스럽게 반응했다.
하지만 인천에서 춘천까지 매주 만나러 오는 그의 정성에 마음의 빗장은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여기에 지긋지긋한 환경에서 벗어나고픈 마음도 더해져 결국 친구 중 가장 먼저 결혼했다. 하지만 결혼에 대한 환상도 로망도 없이 야외촬영도 하지 않고 몇 장뿐인 신혼여행 사진도 나중에 다 버렸다. 남편이 속상해 해도 결국 사람 마음은 변한다는 생각에 ‘괜찮아!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하며 냉랭하게 넘겼다.
그래도 변함없는 사랑 표현에 ‘아직도? 거참 희한하네, 맘 변하면 얘기해 줘!’ 하며 웃어야 할 때 웃지 못하고 슬플 때 슬퍼하지 못하고 아름다워도 아름답게 느끼지 못하는 감성 제로녀가 돼 있었다. 게다가 혼자 힘들게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는 데다 친정 문제까지 겹쳐 우울함과 염려는 극에 달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열심히 교회에 다녔는데도 마음은 더 굳어지며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신가’ 하는 의문만 깊어졌다.
그 무렵 친구를 따라 한마음교회에 갔다가 부활의 주를 만난 제자들은 죽음 앞에서도 기쁘게 순교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럼, 나는 뭐지?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는데 염려에 눌려 냉랭한 가슴으로 살고 있으니….’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마침 어느 언니에게 ‘기자들이 기사를 쓸 때 일어난 사건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처럼, 십자가 사건도 부활도 모두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이 사실대로 기록한 역사’라는 말을 들으며 사건 증인 기록이 있는 성경은 모두 실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법정에서 한 명의 증인만 있어도 재판에 이기는데 제자들은 40일간 부활한 예수님과 함께했고, 결국 생명까지 버린 증인의 삶을 살았다는 사실 앞에 내 모든 생각은 여지없이 깨졌다. 분명한 정황들의 기록은 부활이 모든 사람이 믿을 만한 증거가 틀림없었다. 예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감격을 넘어 천지개벽 같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냥 ‘왜요? 왜 그러셨어요?’라는 말만 되뇌며 흐느꼈다. 오직 내 생각, 내 만족으로 살았던 나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단 악하고 악한 자였다. 그런 나를 위해 목숨까지 내어 주고 부활해 나의 주인이 돼주신 그 사랑에 굴복하고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영접했다.
끊임없던 염려와 두려움이 한순간에 사라지며 감성 제로였던 내 눈엔 눈물만 흘렀다. 부활이 믿어지지 않는다던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술을 끊지 못하다가 결국 식도 출혈로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다. 임종 전 마지막까지 청각은 살아있다는 말에 아버지 귀에 대고 예수님이 아버지 죄를 대신해 죽으셨다고, 3일 만에 부활해 아버지의 주인이 되어 주셨다고, 지금이라도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라며 간절히 복음을 전하며 믿어지면 발가락을 움직이라고 했더니 놀랍게도 발가락을 까딱까딱하며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하며 확인하고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 사랑해요. 아픔도 고통도 슬픔도 없는 천국에서 만나요’라고 고백하며 기쁜 마음으로 보내드렸다.
오랫동안 선데이 크리스천이었던 남편도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다. 어느 날 “내가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은 한선미와 결혼한 거야” 했고, “나도 당신하고 결혼한 것이 최고의 선택이에요” 하며 둘이 꼭 안았다. 나는 둘째를 임신한 불편한 몸으로 교회 언니들과 아파트마다 찾아가 복음을 전했다. 아들 둘을 키우는 아줌마는 임신 중인데도 얼굴이 해같이 빛난다고 놀라워하며 복음을 받고 함께 교회에 다니며 부활의 증인이 되었다.
그 후 간호사였던 경험을 살려 요양보호사 교육원에서 ‘임종’ 과목을 들으며 복음을 전했다. 장애인 아들과 함께 살다 아들이 먼저 죽어 마음이 너무 힘들다던 분은 복음을 듣고 “하나님이 언제 왔다 가셨어? 사람이 진짜 죽었다가 다시 살 수 있어?” 하며 진지하게 물으며 예수님을 영접했고 굳은 얼굴로 삶의 짐에 눌려 살던 어머니도 예수님을 만나 영혼을 살리는 전도자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복음의 능력은 감성 제로였던 나를 예수님 안에서 모든 것을 누리는 자로 변화시켜 가족은 물론 주변 영혼을 뜨겁게 사랑하는 자로 바꾸어 주었다. 셋째 아이에게 ‘우리 엄마 아빠는 지금도 신혼부부 같아요’라는 말을 듣도록 변화시켜 주신 주님과 영원히 동행하며 사명자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한선미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