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세종살이

입력 2023-03-11 04:06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는 지난해 세종시에 파견되며 처음으로 ‘지방 생활’을 시작했다. 세종시는 정부가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전략적으로 개발한 행정도시다. 2012년 출범 당시에는 그야말로 허허벌판이었다고 하나, 이제는 38만 인구가 사는 도시답게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서 생활하는 데 무리가 없다. 가로수와 공원의 나무들이 너무 어려 그늘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점만 빼면 이제 갓 열 살을 넘긴 도시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나의 ‘세종살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평일은 세종에서, 주말은 서울에서 보내는 이중생활로 굳어졌다. 처음에는 평일 약속을 주말로 몰아넣으며 어쩔 수 없이 서울로 향했으나 이제는 약속이 없어도 매주 서울을 찾는다. 버스와 기차와 전철을 오가는 기나긴 여정, 이 피로를 감수하는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니 단지 익숙함에 대한 향수 때문은 아니었다. 나는 세종이라는 공간 자체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세종시는 도시를 관통하는 중심 대로를 따라서 양옆으로 아파트 단지가 줄지어 있고 그 사이에 대형상가가 들어선 전형적인 신도시다. 소위 ‘지방’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달리 신식 건물이 즐비하고 일부는 서울과 겹쳐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세종시의 인구는 60% 이상이 충청권에서 유입돼, 본래 목적인 수도권 인구를 분산시키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

유명 건축가인 유현준 홍익대 교수는 이러한 세종시의 실패 원인 중 하나로 ‘낮은 인구밀도’를 꼽았다. 개발 초기에 아파트 단지부터 여기저기 들어서면서 그 중간에 상가가 생겨났고, 인구밀도가 낮은 상태에서 도시가 개발되다보니 보행자 중심이 아닌 자동차 중심의 생활권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세종에서 자동차 없이 생활하는 나는 주로 여가시간에 가까운 카페나 공원 산책길을 찾는다. 선택지는 그뿐이다. 이 도시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공간이 너무나 한정적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이 도시의 풍경이 너무나 지루하다고 느꼈을 때 나는 서울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지방소멸’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일본의 마스다 히로야 전 총무상은 지방의 소멸위기를 평가하는 지표로 ‘65세 이상 고령자 대비 20~39세 여성의 비율’을 제시했다. 이 지수가 0.5 미만이면 노인 인구가 젊은 여성 인구보다 2배 이상 많아 인구가 감소하고 도시가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우리나라도 한국고용정보원이 매년 이 소멸위험지수를 활용해 통계를 내놓는다. 지난해 3월 기준 전국 228개 시군구(세종과 제주는 각각 1개 지역으로 계산) 중 소멸위험 지역은 113곳(49.6%)이었다.

마스다 히로야의 분석은 아이가 태어날 가능성, 즉 ‘인구 재생력’만 고려했다는 한계가 있다. 이런 이유에서 정부는 2021년 인구감소지수를 새로 도입했다. 인구증감률, 인구밀도, 19~34세 청년의 순이동률, 고령화 비율 등 8개 지표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산정한다. 이 지수를 활용한 결과는 조금 달랐을까. 전국 229개 시군구(세종을 1개, 제주는 행정시 2개로 계산) 중에서 정부가 ‘인구감소지역’으로 공식 지정한 곳은 89곳, ‘인구관심지역’은 18곳이다. 결국 107곳(46.7%)이 소멸 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미다.

각 지역이 저마다의 위기감 속에서 해법을 내놓고 있지만 인구 정책의 핵심이 되는 ‘청년’과 ‘여성’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눈에 띄는 대안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다만 세종사람도, 서울사람도 아닌 어중간한 신세에서 1년을 보내고 나니 ‘서울과 비슷한 도시’가 해법이 아니라는 것은 어렴풋이 알겠다. 우리나라에서 지방에 정착한다는 건 ‘서울이 아니어도 되는 이유’를 찾는 것과 마찬가지일 테니까 말이다.

유 교수는 ‘어디서 살 것인가’라는 책에서 우리가 사는 곳에 대한 정의를 어느 동네로 이사가고, 어느 아파트 단지에서 몇 평까지 살 수 있나로만 생각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어디에서 살 것인가하는 문제는 정해진 답이 없으며 ‘이 공간은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가?’ 자문해보는 과정이 있을 뿐이라고도 썼다.

서울 밖의 삶, 지방을 살리는 문제 역시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하길 바란다. 유 교수의 말대로, “우리는 우리가 살 곳을 만들어 가야 한다. 당연히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미래는 바뀌지 않는다.”


박상은 사회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