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판 쉰들러 리스트’ 서우석(55) 아프가니스탄 선교사는 2021년 8월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간을 점령한 후 100명 넘는 난민 구출 사역을 이어오고 있다. 매일 매 순간이 생사를 넘나드는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기적을 경험했다. 최근 ‘마지막 구출작전’이나 마찬가지였던 20여명의 구출 작업 중인 서 선교사를 9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불혹에 입대, ‘아프간’을 품다
재미교포인 서 선교사는 2008년 1월 불혹이었던 40세에 군에 입대했다. 아프간으로 파병된 그는 자연스럽게 아프간을 마음에 품게 됐다. 서 선교사는 “그동안 하나님의 콜링을 두 번이나 받았지만 외면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불순종하는 동안 철저히 실패를 경험했다”고 고백했다.
미국에서 유학생을 대상으로 목회하던 서 선교사의 아내는 2007년 교회에서 만난 한인 여성 군목에게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사연을 들은 군목은 서 선교사의 입대를 제안했고 그는 뒤늦은 입대를 결정했다.
3대째 신앙을 물려받은 그였지만 군대에서 의무병으로 훈련받으며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경험했다. 서 선교사는 “군대 리더들이 모든 군인을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치열하게 군대생활을 하던 어느 날 서 선교사는 발가락 염증으로 인한 아픔을 호소하며 미군을 찾은 현지 할아버지를 만났다. 그의 발은 흙과 먼지, 그리고 피로 범벅이 돼 있었다.
“그날 밤 숙소에서 잠을 청하는데 자꾸 할아버지 생각이 났어요. 그때 ‘우석아 네가 아프간을 섬겨주렴’이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죠. 하나님의 콜링에 즉각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전쟁 한복판에서 복무하면서 쉬는 시간을 쪼개 오랜 전쟁으로 어려움을 겪는 과부와 고아를 섬기기로 했다. 현지 생활에 대한 글을 블로그에 올렸는데 이에 감동한 미국인들의 지원으로 3000여명에게 구호 물품을 전달했다. 2010년 4월 비영리법인 ‘힘펀드’를 설립해 다음세대에게 글과 기술 등을 가르쳤다. 교육과 사회 생활의 기회를 박탈당한 아프간 여성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재봉 기술도 보급했다.
목숨 건 100여명의 구출 이야기
2014년 제대한 그는 미국 고든콘웰신학교에서 목회학석사 과정을 마쳤다. 목회자의 자격을 갖춘 것이다. 아프간 입국을 기다리던 2021년 8월 15일 아프간 수도 카불에 탈레반이 입성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프간에서는 미국인과 일한 현지인의 목숨이 위험했다.
“여러 구호단체에 저와 일한 현지인들을 구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려 한 명도 빼내지 못했어요. 제가 직접 가서 구출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고 그다음 달 중순 파키스탄으로 떠났다. 오래전부터 이곳엔 아프간 난민타운이 들어서 있었고 아프간 접경 지역이다 보니 다른 곳보다 구출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처음 다섯 가정의 구출을 시도했는데 과정은 험난했다. 목숨을 걸고 스무 군데 넘게 탈레반의 검문을 통과해 파키스탄을 눈앞에 두고 있었는데 파키스탄의 국경 문이 닫힌 바람에 오도가도 못한 일도 있었다.
서 선교사는 파키스탄에 있는 브라질대사관을 통해 난민 신청을 추진했다. 대사관은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간에서 공식적인 여권과 비자를 요구했다. 서 선교사는 “정부가 없는 아프간에서 여권 등의 서류를 받는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현지에서 서류 등을 갖추고 협상하는 과정에서 아찔한 순간이 수없이 많았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지난해 1월 다섯 가정의 구출을 성공했다. 4개월 만에 이룬 기적이었다. 첫 구출 후 최근까지 77명의 아프간인을 구출했다.
아프간인들이 브라질 등 제3국으로 이동하고 타국에서 적응하기까지 필요한 항공료 숙소 생활비 등 모든 비용은 서 선교사가 부담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중보기도와 십시일반이 일군 기적
서 선교사는 “재정이 없고 구출 경험도 없는 저에게 하나님은 불가능한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꿈꾸게 하셨다. 요한복음 10장 11절에 나온 ‘선한 목자’되신 주님만 의지했다”고 했다. 그는 힘펀드를 통해 모금하고 미국·한국 교회와 성도들에게 기도 편지를 보내며 중보기도를 요청했다.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와 십시일반으로 모아진 헌금은 귀중한 생명을 구하는 데 쓰였다.
“하나님이 하신 일에 감격스럽습니다. 아프간에서 하나님을 믿는 분들이 신앙을 잘 지키고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이들을 돕는 선교사들도 힘을 얻도록 계속 기도해주십시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