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업공개(IPO) 시장에서 대형주가 자취를 감춘 가운데 증권사들이 대형 스팩(SPAC, 인수합병목적회사) 설립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스팩은 증시 불안 시기에 중견기업들의 상장 우회로가 될 수 있고, 미리 투자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다. 다만 실질적으로 합병하기 위한 기업 물색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도 나온다.
스팩은 기업의 인수·합병만을 목적으로 설립한 일종의 페이퍼컴퍼니다. 3년 내 합병 대상을 찾지 못하면 상장 폐지되지만, 일반 기업의 상장폐지와는 다르게 투자 원금을 보장받으며 은행 수준의 이자까지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투자자들 사이에서 선호도가 높다.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규모 200억원 이상의 스팩주가 연이어 증시를 두드리고 있다. 이달 초 공모금액 400억원인 삼성스팩8호가 상장한 데 이어 700억원 규모의 미래에셋드림스팩1호도 오는 15일부터 코스닥 시장에서 거래된다. 당초 스팩의 공모규모가 100억원 내외에 머물렀던 점을 고려하면 스팩의 대형화가 이뤄지는 추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0년 19건에 머물렀던 스팩 상장 건수는 재작년 25건, 지난해 45건까지 급증했다. 2010년 스팩 제도 도입 이래 최고치다.
스팩 시장은 지난해 IPO 시장이 부진하자 대안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한 기관 투자자는 “일단 투자만 하면 원금에 이자까지 받을 수 있는데다 합병 성공 시 시세차익까지 얻을 수 있다”며 증시 불안기에 스팩을 찾는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해 미국에서 시작된 스팩 ‘밈(meme, 유행콘텐츠)’ 열풍도 스팩 활황에 불을 붙였다. 스팩은 입소문을 통해 투자하는 일종의 ‘밈 주식’으로 떠오르며 투자금을 모았다. 비상장 우량주와의 합병 기대감에 국내에서도 일부 스팩주는 이유 없는 급등세를 보이기도 했다.
여기에 최근 공모규모가 큰 대형 스팩이 늘어난 배경은 미리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다. 이경준 혁신IB자산운용 대표는 “대형 스팩이 늘어난다는 것은 1000억원 정도 되는 중견 기업을 붙인다는 의미”라며 “지금 시장에 1000억원대 기업도 씨가 마른 상황이라 IPO가 사실 쉽지 않지만 시장에 돈이 돌 때 미리 자금을 조달받으려는 목적”이라고 말했다. 스팩 순자산 규모가 크면 합병 대상 기업을 찾는 것 역시 어려워진다.
일각에서는 대형 스팩이 기관투자자들의 자금을 흡수하게되면서 시장에 돌아야 할 투자금을 묶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준희 기자 zuni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