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에서 해외 관객들로부터 ‘소희는 지금 세상에 없지만 김시은으로서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응원을 받았다. 나를 소희라는 인물 자체로 받아들여 준 것이 감사했고, 소희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전세계에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영화 ‘다음 소희’에서 주인공 소희 역을 맡은 배우 김시은은 지난달 2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된 ‘다음 소희’는 지난 2017년 전주에서 대기업 콜센터에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특목고 학생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다. 영화는 캐나다 판타지아국제영화제, 프랑스 아미앵국제영화제, 일본 도쿄필맥스영화제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됐고, 다음달 프랑스와 대만 등 해외 개봉을 앞두고 있다.
소희 역 오디션 당시 김시은과 이야기를 나눠 본 정주리 감독은 대사 한 마디 시켜보지 않고 캐스팅을 확정지었다. 김시은은 “연기도 준비하고 극중 소희가 추는 춤도 연습해서 갔다”며 “이런 이야기를 반드시 세상에 알리고 싶다는 솔직한 마음을 전하고 사적인 이야기를 털어놓게 됐다. 감독님께서 ‘다음에 만나면’이라고 말씀하셔서 믿기 어려웠다. 선택을 후회하지 않게 해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소희의 감정에 몰입해 있는 상황은 쉽지 않았다. 밝고 자기 주관이 뚜렷한 고교생 소희는 콜센터에서 노동착취와 부당대우를 당하면서 절망하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형사 유진(배두나)은 소희가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과정을 쫓는다.
김시은은 “눈물을 흘리지 않아야 하는 장면에서도 계속 눈물이 흘렀다. 감독님께서 ‘현장에서만 소희면 된다. 일상 생활에서 힘들지 않았으면 한다’고 조언해주셨다”며 “제가 잘 해내야 배두나 선배가 나오는 영화 후반에 관객들에게 감정이 잘 전달될 거라는 생각에 부담도 컸다”고 했다.
소희가 콜센터에서 고객에게 성희롱 당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 특히 괴로웠다고 김시은은 털어놨다. 그는 “수치스럽고 불쾌하고, 더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기하면서 많이 울었다”면서 “콜센터에서 직원들이 ‘고객님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소리가 웅성웅성 들릴 때 숨이 턱 막혀서 힘들었다”고 돌이켰다.
이번 영화는 학교와 사회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여전히 곳곳에 존재하는 ‘소희’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김시은은 “소희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해도 힘이 안 될 거라는 걸 알기에 조심스럽지만 ‘존재만으로 소중하다’고 말해주고 싶다”며 “그들이 ‘소희’가 돼 가는 과정이 아프다. 과연 사회가 바뀔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고도 말했다.
김시은은 “단단하되 유연한 배우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앞으로 겪을 일들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고 제 방향을 지켜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건강한 인간’이 돼야 대중의 사랑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나직이, 그러나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