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게르니카 그리고 양귀비

입력 2023-03-11 04:08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은 스페인 3대 미술관 중 하나다. 그곳에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운영 규칙이 있다. 상설 전시 구역은 사진 촬영이 가능한데 그 구역 중 하나인 206호실만 촬영이 금지된다. 206호실의 남다른 특징도 있다. 전시실이 다른 곳에 비해 워낙 커 11개 구역으로 나눠 다시 번호를 붙였다. 206-1, 206-2처럼.

206호실을 둘러보던 중 문득 이런 궁금증이 생긴다. 반 고흐, 살바도르 달리, 호안 미로 등 세계적 작가의 작품을 206호실이 아닌 곳에선 찍을 수 있는데 206호실에 있는 작품은 찍을 수 없다는 점이다. 궁금증은 206-6에 들어가는 순간 풀린다. 사방이 하얀 이 방에는 하나의 작품만 걸려 있다. 가로 776.6㎝, 세로 349.3㎝의 이 대형 작품 양옆엔 정장 차림의 박물관 직원이 근엄한 표정으로 작품을 경호하듯 앉아 있다. 작품의 훼손 여부를 확인하려고 초소형 카메라가 작품 위 레일을 따라 스캔하듯 오가기도 한다. 이 작품은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다.

분위기와 작품 크기에 압도됐던 감정을 추스르니 비로소 그림이 보인다. ‘게르니카’에는 1937년 스페인 내전 중 프랑코 세력을 지지한 나치의 폭격기가 바스크 지방인 게르니카를 무자비하게 폭격해서 나온 수많은 희생자가 담겨 있다. 희생자 모습을 흑백으로 기이하게 처리해 전쟁의 비극을 극적으로 연출하고 있다. 스페인 현지인에게 “당신들에게 게르니카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물었다. 게르니카는 전쟁 참상을 알리는 반전의 상징인 동시에 스페인의 정신을 보여주는 그림이라고 설명했다. 그제야 206호실 전체를 촬영하지 못하도록 한 게 이해됐다. 예술의 힘은 여기에 있다. 게르니카를 통해 전 세계인이 스페인 내전을 기억한다.

게르니카 이야기를 한 건 1년이 지난 우크라이나 전쟁을 말하기 위해서다. 한국의 설치미술 작가인 전병삼은 지난해 자신이 가진 돈과 후원금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붉은 양귀비꽃 사진에 ‘나의 마음이 항상 당신과 함께합니다(MY HEART IS ALWAYS WITH YOU)’라는 문구가 인쇄된 가로 10㎝, 세로 4㎝의 종이를 반으로 접어 아코디언처럼 108장을 차곡차곡 쌓았다. 이를 가로 10㎝, 세로 10㎝의 사각형 박스에 넣었다. 당시의 민간인 사망자 5401명을 기억하기 위해 5401개 박스를 만들려면 58만3308장을 접어야 했다. 전 작가는 “우크라이나에서 양귀비는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꽃이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종이를 접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2t 분량 작품과 함께 폴란드로 날아갔다.

전 작가의 기사에 달린 댓글은 게르니카를 떠올리게 했다. 작품 만들 돈이면 피란민 돕는데 쓰라거나 무기 구입을 지원하라는 글이 다수였다. ‘그럴 수 있겠구나’, 댓글에 수긍하려던 찰나 마치 전 작가의 뜻에 동조하듯 전 세계 작가들이 움직였다.

얼굴 없는 거리의 아티스트 뱅크시는 우크라이나 호스토멜에 벽화 7점을 그린 뒤 자신의 SNS에 이 같은 글을 올렸다. “나는 이 스크린프린트 중 50개를 만들었고 모든 수익금은 우크라이나에 있는 우리 친구들에게 갈 것입니다.” 그의 작품은 1점당 5000파운드(약 738만원)에 팔렸다. 수익금은 구급차 난방기구 등을 구입하는 데 사용할 거라고도 했다. 멕시코 화가인 로베르토 마르케스는 우크라이나 키이우 인근 이르핀의 파괴된 다리에 게르니카에서 영감받은 그림을 그렸다.

이들은 무기를 들고 전장에 나가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쟁으로 고통받는 약자들의 아픔을 기억하고 더 이상 전쟁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피카소가 스페인 내전뿐 아니라 국경을 초월해 전쟁의 이야기를 다룬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는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국의 평화를 기원하며 ‘전쟁과 평화’(1952)라는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만약 피카소가 전 작가의 기사에 달린 댓글을 봤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가 남긴 말로 대신해 보려고 한다. “그림은 아파트나 치장하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그림은 적과 싸우며 공격과 방어를 하는 하나의 무기입니다.”

서윤경 종교부 차장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