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해’가 돼버린 정치… 한심한 현수막 당장 걷어내라

입력 2023-03-10 04:03
지난 20대 대통령 선거 공식 선거 운동 기간 거리에 걸려 있던 각 후보 현수막(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는 사진입니다). 연합뉴스

전국 도시마다 현수막 전쟁터가 됐다. ‘깡패’ ‘매국노’ ‘감옥’ ‘탄핵’ 같은 자극적 어휘로 뒤덮인 정당 현수막이 거리를 점령했다. 여야가 서로 헐뜯고 비방하는 현수막을 경쟁적으로 내걸면서 여의도의 볼썽사나운 정쟁이 국민의 일상에 파고들어 하루 종일 시선을 괴롭힌다. ‘이재명판 더 글로리’란 국민의힘 현수막 옆에 ‘정순신판 더 글로리’란 더불어민주당 현수막이 나란히 걸리고, 초등학교 교문 앞에 아이들 보기 민망한 조롱과 악담이 나부끼고 있다. 난립하는 현수막이 가게를 가린다는, 보행과 운전을 방해하고 도시 경관을 해친다는, 그리고 무엇보다 보기 싫다는 민원이 쇄도했다. 오죽하면 서울옥외광고협회 송파지부 회원들이 집회를 열어 “시민 정신건강을 해치고 공해 수준의 사회적 피해를 야기하는 정당 현수막 제작을 거부한다”고 선언했겠나.

지난해 12월 옥외광고물법이 바뀐 지 불과 석 달 만에 이리됐다. 더불어민주당 김민철 의원이 대표 발의해 개정된 법률은 정당 현수막의 수량·규격·장소부터 신고·허가 절차까지 모든 제한을 없애버렸다. 내용도 ‘통상적 정당 활동’이란 모호한 범주로 규정해 사실상 아무 문구나 마음대로 내걸 수 있게 했다. 개정 취지는 “정당법이 정치적 홍보활동을 보장했는데, 왜 옥외광고물법이 이를 규제하느냐”는 거였다. 그래서 정치의 자유를 챙겨가더니 석 달 만에 이렇게 거리를 오염시켜 놓았다. 공해가 돼버린 정치. 슬픈 일이다. 정당의 홍보활동이 오히려 정치 혐오를 키우고 분열을 조장하는 한심한 현실은 우리 정치의 수준을 말해주고 있다.

서울 대전 울산 창원 등의 지방자치단체들이 보다 못해 정당 현수막 규제 방법을 찾아 나섰다. 국회와 행정안전부에 법률 및 시행령 재개정을 건의하고 자체 조례를 통한 해법도 모색하려 한다. 이 지경을 만든 정치권에 결자해지의 책임이 있다. 국회가 나서서 현수막을 걷어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