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정순신 조국 이재명 곽상도

입력 2023-03-10 04:08

변호사, 전 법무부 장관, 더불어민주당 대표, 전 국회의원. 칼럼 제목에 이름을 나열한 전·현직 고위 공직자 4명의 직책이다. 일류 법 전문가인 동시에 법률 권력과 지식을 총동원해 반칙을 일삼은 법 기술자들이다. 보수 진영에 정순신 변호사와 곽상도 전 의원이 있다면 진보 진영엔 조국 전 장관과 이재명 대표가 있다. 서로를 같은 부류로 엮으면 양측 모두 펄쩍 뛰겠지만, 이 네 명은 이념과 정파를 초월한 네쌍둥이다. 정순신은 조국을 닮았고, 이재명은 곽상도를 닮았다.

넷 모두 법을 잘 알았다. 나쁜 방식으로 잘 알았다. 특수부 검사 출신 정 변호사는 학교폭력 가해자인 아들을 위해 소송으로 전학 결정에 저항했다. 재심 청구, 행정소송을 총동원했다. 대법원까지 간 끝에 결국 패소했지만 피해 학생의 지옥 같은 시간은 그만큼 더 길어졌다. 자녀 입시를 위해 스펙을 위조한 조 전 장관은 수사와 재판 내내 법 기술을 극한까지 활용했다. 검찰 수사에서는 ‘진술거부권’을, 법정에서는 ‘증언거부권’을 방패로 내세웠다. 그런 노력에도 배우자는 대법원 유죄판결을, 본인은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딸 조민씨의 대학 입학 취소 결정에는 ‘무효 소송’으로 대응 중이다.

이 대표와 곽 전 의원은 아예 같은 대장동 비리 사건으로 엮였다. 이 대표의 최측근들은 대장동 일당에게 검은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이 대표 자신에게도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본인이 그렇게도 맹렬히 비판했던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방탄 안으로 숨었다. 곽 전 의원 아들은 대장동 일당 회사에서 근무한 뒤 퇴직금 등으로 50억원을 받았다. 1심 재판부는 50억원이 과다하다면서도 ‘대가’로 건넨 돈으로 보기 어렵다며 곽 전 의원에게 뇌물 무죄를 선고했다. 그가 대장동 일당에게 받은 5000만원만 정치자금법 유죄로 인정됐다. 헐거운 법망을 빠져나간 곽 전 의원 가족의 품엔 거액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넷 모두 ‘법대로’를 외치면서 진심을 담은 반성은 하지 않는다. 정 변호사는 국가수사본부장 임명 하루 만에 물러났지만 피해 학생·학부모를 찾아 사과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조 전 장관은 아직도 ‘멸문지화’ 운운하며 사화에 휘말린 조선시대 선비 흉내를 낸다. 본인 이름을 내걸고 여러 책을 출판하다 급기야 ‘법 고전 산책’이라는 책까지 냈다. 이 대표는 측근 구속에도 유감 표명 없이 ‘야당 탄압’을 거론하며 개인 비리 사건을 정치화한다. 곽 전 의원은 “무죄가 날 거라고 생각했다”며 정치자금법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했다. 공직자의 품위는커녕 최소한의 윤리의식조차 찾을 수 없다.

희극적인 것은 같은 틀로 찍어낸 것처럼 빼닮은 네 사람을 두고 여야 정치권과 극렬 지지층이 원수처럼 편을 갈라 싸운다는 점이다. 조국 수호 최전선에 섰던 이들이 정순신을 제일 큰 목소리로 욕하고, 조국을 수사했던 이들이 정순신을 고위공직자로 슬쩍 임용한다. 그러면서도 ‘국민이 두렵지 않은가’ ‘죄지었으면 벌 받아야지’ 따위의 정치 현수막을 길거리마다 내걸고 시각공해를 일으킨다. 봉준호 영화의 한 장면을 방불케 하는 블랙코미디다.

작은 차이라면 보수 진영은 그나마 정순신과 곽상도를 조기 ‘손절’한 반면, 진보 진영은 아직도 조국의 강과 이재명의 늪에서 허우적댄다는 점일 것이다. 하지만 이 정권도 안심할 처지는 못 된다. 법률가, 그중에서도 특수부 출신 검사들이 요직을 독점하다시피 한 것이 이 정부의 권력 구조다. 견제와 균형이 무너지면 제2의 정순신과 곽상도, 보수 버전의 조국과 이재명이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정권의 실력자들이 늘 스스로 삼가고 경계해야 할 이유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법률가’들이 끼친 해악과 후유증이 이미 너무 깊다.

임성수 사회부 차장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