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버추얼 아이돌, 전세계 K팝 팬덤이 좋아하는 요소 고민했죠”

입력 2023-03-11 04:06
버추얼 걸그룹 ‘메이브(MAVE:)’를 만든 카카오엔터테인먼트 한나래 메이브 프로덕션 팀장, 오유경 메이브 TF장, 김지원 메이브 A&R 팀장(왼쪽부터). 그룹명엔 메타버스 시대의 진정한 흐름을 보여주겠다는, K팝 시장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겠다는 포부를 담았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2023년 1월 25일, 4인조 걸그룹 메이브(MAVE:)가 데뷔했다. 메이브는 감정의 자유를 찾아 미래에서 온 네 명의 소녀가 현실 세계에 불시착했다는 세계관을 내세웠다. 데뷔곡 ‘판도라’엔 감정을 잃어버린 미래 세계에서 희망을 찾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메이브는 버추얼 걸그룹이다. 그룹명엔 메타버스 시대의 진정한 흐름을 보여주겠다는, K팝 시장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겠다는 포부를 담았다. 팀은 리더 겸 메인 보컬 시우, 리드 보컬 제나, 메인 래퍼이자 퍼포먼스 담당 타이라, 서브 래퍼 마티로 구성됐다.

메이브를 만든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오유경 메이브 태스크포스(TF)장과 한나래 메이브 프로덕션 팀장, 김지원 메이브 아티스트 앤드 레퍼트와(A&R) 팀장을 지난달 23일 서울 강남구 카카오엔터 사옥에서 만났다.

한 팀장은 “가상 걸그룹이라고 해서 기존의 아이돌과 다르게 접근하지 않았다. K팝 문화, 팬덤의 소통 방식 등을 똑같이 적용했다”며 “‘글로벌’을 첫 번째 키워드로 삼아 고민했다. ‘해외에서 K팝 아이돌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했을 때 역동적인 퍼포먼스, 당당한 분위기 등에 팬들이 매료되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메이브는 음악 기획 및 프로듀싱,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등 카카오엔터의 엔터테인먼트 역량에 넷마블에프앤씨의 메타버스 기술력을 더한 결과물이다. 기존의 가상 아이돌과 달리 신인 아이돌 그룹 개발과 같은 과정을 통해 콘셉트 비주얼을 기획하고 음반과 뮤직 비디오를 제작했다.

김 팀장은 “아이돌의 공식은 그들만의 세계관이 있고 그게 가사와 음악 안에 녹아있다는 것, 그걸 바탕으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는 거다. 메이브도 그 공식에 따랐다”며 “그게 기존의 가상 아이돌과 메이브의 차이점이다. K팝 팬들이 좋아하는 요소는 빼놓지 않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음악과 뮤직비디오 제작에는 세븐틴, 레드벨벳, 몬스타엑스와 협업한 프로듀서 맥쓰송과 카일러 니코, 아이유의 ‘라일락’ 뮤직비디오 등을 연출한 플립이블 등 K팝 시장을 이끌고 있는 유명 스태프들이 참여했다. 안무 총괄은 아이브의 ‘일레븐’과 ‘러브 다이브’ 등 다수의 걸그룹 안무를 담당한 프리마인드 팀이 맡았다. 저스트절크의 조나인과 캐스퍼도 메이브의 퍼포먼스에 힘을 더했다.

시각적인 면에서도 메이브는 차별화를 시도했다. 기존의 가상 아이돌이 딥러닝·딥페이크 기술로 제작됐다면 메이브는 실사에 가깝게 풀3D로 제작됐다. 뮤직비디오와 방송 등의 영상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판도라’ 뮤직비디오에서 메이브 멤버들은 가상현실을 배경으로 역동적인 칼군무를 선보인다.

버추얼 걸그룹 메이브 멤버들. 리더 겸 메인 보컬 시우, 리드 보컬 제나, 메인 래퍼이자 퍼포먼스 담당 타이라, 서브 래퍼 마티로 구성됐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김 팀장은 “버추얼 그룹이라서 오히려 가능한 게 많았다. 안무가들은 실제 아이돌이 하기 힘든 속도의 안무를 시도하고, 뮤직비디오를 만들 때도 상상을 더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었다”며 “처음부터 기존 아이돌은 할 수 없었던, 높은 난이도의 퍼포먼스를 구성해달라고 주문했다”고 말했다.

한 팀장은 “실제 아이돌은 멤버 간 실력 편차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버추얼 아이돌은 그런 점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특징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메이브는 1990년대 중반 이후에 태어낸 Z세대, 이른바 ‘젠지(Gen-Z)’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데뷔 2주만에 뮤직비디오 조회 수가 1000만 뷰를 돌파했고, 틱톡에선 메이브의 춤을 따라하는 댄스 챌린지 영상도 만들어졌다.

오 TF장은 “실제로 추기엔 어려워서 일반인들이 댄스 챌린지를 하기 어려울거라 생각했는데 다들 실력이 대단했다. 메이브의 노래를 커버하는 영상도 점점 늘고 있다”며 뿌듯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세 사람이 그간 K팝 아티스트를 만들어 온 베테랑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 TF장은 로엔엔터테인먼트(카카오엔터의 전신)에서 아이유의 마케팅에, 다른 두 사람은 카카오엔터 산하 레이블인 IST엔터테인먼트에서 그룹 더보이즈 작업에 참여했다. 업계에서 일하며 만들어 온 폭넓은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었다.

MBC 음악 프로그램 ‘쇼! 음악중심’ 출연 영상도 크게 화제가 됐다. 가상 걸그룹이 실제 가수처럼 공중파 방송에 나와 무대를 펼쳤다는 점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멤버들은 관객이 있는 무대와 가상 공간을 넘나들며 퍼포먼스를 펼쳤다.

오 TF장은 “MBC에서 관심을 많이 가지고 호응해 주셔서 가상 무대를 함께 만들 수 있었다. 카메라 앵글같은 기술적인 부분은 방송사에서 준비를 많이 해주셨다”면서 “두 번째 방송을 준비할 땐 팬덤명을 모집하면서 응원법을 공개하고 팬들의 목소리 참여를 요청했는데 각국 팬들이 보내준 응원이 방송에 나갔다. 메타버스 기술과 방송사의 협조, 팬들의 응원이 합쳐져 만들어진 무대”라고 밝혔다.

김 팀장은 “무대를 마무리할 때 멤버들 각각의 표정도 눈여겨볼 만하지만 뮤직비디오에선 보여주지 않았던 안무와 애드리브 보컬도 하나하나 고민한 결과물”이라며 “노래도 라이브 음원용으로 따로 만들었다. 재미있는 작업이었다”고 돌이켰다.

세계 무대를 겨냥한 K팝 아이돌인만큼 어떻게 하면 해외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에 대한 TF의 고민 컸다. 오 TF장은 “지역별 팬덤을 고려해 각 나라의 인사말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미래에서 불시착한 네 명이 눈을 뜬 장소를 한국, 미국, 프랑스, 인도네시아로 설정했다”면서 “실제로 각 지역에서 그 나라 언어를 구사하는 멤버를 더 많이 응원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메이브와 세계관을 공유하는 웹툰 ‘메이브: 또 다른 세계’ 이미지.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버추얼 아이돌의 강점은 지적재산권(IP) 확장이 빠르다는 점이다. 웹소설, 웹툰, 게임 등 다양한 분야에서 IP를 활용할 수 있다. 카카오엔터는 메이브의 세계관을 공유하면서 새로운 서사를 담은 웹툰 ‘메이브: 또 다른 세계’를 지난달 선보였다. 웹툰 속에서 네 명의 멤버는 한국에 불시착해 아이돌 연습생 오디션에 참가하게 되고, 걸그룹이자 나아가 미래를 바꾸는 전사로 성장한다.

실제 아이돌을 버추얼 아이돌이 대체할 수 있을까. 이들에게 버추얼 아이돌 시장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오 TF장은 “아직은 기술 투자가 필요한 단계고, 해결해야 하는 과제들이 많다. 예를 들면 버추얼 아이돌은 기술상의 문제로 바이러스가 걸릴 수도 있다”면서 “사람이 가진 매력을 가상 인간이 대체할 수 없다. 버추얼 아이돌은 새로운 장르, 다른 시장”이라고 강조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