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애즈버리’와 부활절 퍼레이드

입력 2023-03-10 04:02

개신교인들 사이에 미국 켄터키주 소도시 윌모어에 위치한 애즈버리대가 화제다. 전교생이 1600명 조금 넘는 이 작은 기독교 대학 강당에서 일어난 일 때문이다. 여느 때처럼 학점 이수를 위한 채플이 열린 지난달 8일 오전, 모든 순서가 끝난 뒤에도 학생들은 강당을 떠나지 않고 예배를 이어갔다. 이후 24시간 끊어지지 않은 자발적 예배가 2주나 계속됐는데 찬양과 기도, 회개, 간증이 이어지고 즉석 구제와 병 고침, 축사(逐邪) 등 초자연적 체험도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를 ‘2023년 애즈버리 부흥(revival)’이라 부른다.

미국 사회는 꽤 놀란 듯하다. 역사상 가장 비종교적인 세대라는 20대가 중심이 된 영적 현상이어서다. 이 소식이 처음 알려진 것도 학생들이 틱톡과 인스타그램에 라이브 영상을 올리면서였다. 수많은 젊은이가 경건한 음악에 맞춰 손들고 울며 기도하는 모습은 미국인들에게도 놀라운 광경이었다. 곧 여기에 동참하고자 미 전역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하루 5만~7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예상치 못한 인파에 안전과 혼란이 우려되자 학교 당국은 지난달 24일 모든 집회의 중단을 발표하게 된다.

종교적 신비 체험에 대한 고정관념과 달리 참석자들은 이 집회가 감정의 무분별한 폭발이 아니라 매우 차분하고 절제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고 전한다. 학교와 학생기구는 유명 연사, 찬양 인도자의 참여 제안도 거절하고 모든 과정이 철저히 학생들에 의해 주도되도록 했다. 애초에 이 일 자체가 인간의 계획이 아닌 철저한 신적 개입의 결과임을 명확히 하려는 의도였다. 더 인상적인 건 미디어의 접근을 불허하고 일체의 홍보활동을 하지 않기로 한 결정이다. 참석자들이 올리는 포스팅과 영상은 허용했지만 언론의 현장 취재는 거부했다. 총장은 학생들의 진솔한 경험을 최대한 존중하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설명한다.

애즈버리 부흥이 지닌 의외성과 초자연성은 미디어와 사회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현장을 체험한 이들은 오히려 이를 무분별하게 과시하거나 얄팍하게 소비되는 걸 경계한다. ‘부흥’이라는 종교 언어가 세속 언어로 번역, 전달됐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오역과 왜곡의 우려를 분명히 인식한다는 말이다. 부흥이란 일회적 신비 현상이 아닌, 이를 통해 거둬들일 사회적 열매에 더 어울리는 개념이라는 자성도 읽힌다.

때마침 내달 9일 한국교회총연합이 주최하는 ‘부활절 퍼레이드’ 소식이 들린다. 교인 1만여명이 광화문광장부터 서울광장까지 행진하는 행사다. 주최 측은 한국교회 140년 역사상 첫 부활절 퍼레이드라 의미를 부여하고, 불교의 연등회 못지않은 연례행사로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당일 공연할 유명 가수들의 이름도 보도됐다.

애즈버리 사례와 묘하게 대비된다. 계획만 보면 신앙인들끼리 예수 부활을 축하하는 자리는 아닌 듯하다. 서울 한복판에서 열리는 만큼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는 이벤트임이 분명하다. 세상과 미디어의 관심을 기대하고 또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이 도드라지며, 종교의 언어를 세속의 언어로 번역해 전달하겠다는 의지도 강하다. 하지만 애즈버리 사람들처럼 오역, 왜곡에 대한 걱정과 조심스러움은 잘 보이지 않는다.

원래 2020년에 출범하려던 행사인데 코로나로 3년 연기됐다고 하니 그간 움츠러들었던 한국교회의 부흥을 꿈꾸는 프로젝트인 셈이다. 기왕 하기로 했다면 부활의 참뜻을 세속의 언어로 잘 번역해내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러려면 지난 3년간 개신교를 향한 대중의 시선이 어찌 변했는지 정확히 이해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팬데믹 기간 한국교회가 보여준 여러 아쉬움은 그 과정을 경시한 데서 비롯한다는 평가를 무시해선 안 된다.

박진규(서울여대 교수·언론영상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