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남는 쌀을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내용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두고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개정안이 쌀 공급 과잉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이유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이번달 말 개정안 처리를 예고한 가운데, 정부는 이와 별개로 쌀 수급 조절을 위해 벼 재배 면적을 줄이는 작업에 착수했다.
8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기재부 농림해양예산과는 최근 농업 분야 전문가 3명을 초청해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간담회를 진행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정부가 쌀 구매 명목으로 매년 1조원 가량의 세금을 써야 하기 때문에 재정당국이 실효성 점검에 나선 것이다.
참석자들은 입을 모아 개정안 통과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쌀값 폭락을 막고 농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한 참석자는 “국민들의 식성 변화로 쌀 소비가 줄고, 초과 공급이 이어지면서 쌀값 하락은 필연적”이라며 “정부는 남는 쌀을 사는 대신, 소비를 늘리거나 공급을 줄이는 근본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간담회에선 타 작물을 재배하던 농가들이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추가로 벼 재배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공급 과잉 구도가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또 개정안에 정부가 구매한 쌀에 대한 처리 방법이 명시돼 있지 않다는 점도 지적 대상이 됐다. 묵혀둔 쌀은 가격이 계속 떨어지기 때문에 정부 재정이 낭비될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다.
다른 참석자는 “쌀이라는 개별 품목을 특정해 지원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며 “정부와 농가 모두 소득이 가장 큰 문제라 안정적인 소득 구조를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와 전문가들의 우려에도 민주당은 오는 23일이나 30일 열릴 예정인 국회 본회의에서 개정안 통과를 밀어붙인다는 계획이다. 개정안이 처리되면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농업인들의 혼란도 덩달아 커질 것으로 보인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야당에 대한 맞대응 차원에서 쌀 생산량 감축 정책을 꺼내들었다. 농식품부는 이날 올해 벼 재배 면적을 전년(72만7000㏊) 대비 3만7000㏊(5.1%) 줄인 69만㏊로 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계획대로 된다면 올해는 해방 이후 처음으로 벼 재배 면적이 70만㏊를 하회하는 해가 된다.
농식품부는 벼 대신 콩과 가루쌀 등 식량안보에 도움이 되는 작물을 재배할 경우 인센티브를 주는 ‘전략작물직불제’를 도입해 면적 축소를 유도하기로 했다. 대체 면적에 비례해 ㏊ 당 최대 430만원을 지급한다. 이를 통해 1만6000㏊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나머지 2만1000㏊는 지자체 자체 지원금 등을 활용해 타작물로 대체할 계획이다. 김인중 농식품부 차관은 “쌀 산업의 근본 문제인 수급 불균형 해소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세종=박세환 신준섭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