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비가 역대 최고치로 치솟자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이미 사교육 시장을 자극할 수 있는 교육 정책들이 줄줄이 예고된 상태다. 교육부는 사교육을 억제하는 정책과 유발할 수 있는 정책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딜레마에 놓였다. 교육계에서는 당분간 사교육비 상승 흐름을 꺾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교육부 관계자는 8일 “사교육비 증가 요인을 면밀히 분석한 뒤 부문별 경감 대책을 마련해 올 상반기 중으로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전날 발표된 ‘2022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에서 사교육비 총액(26조원)을 비롯한 주요 지표가 최고점을 찍으면서 “이런 상황이라 아이를 안 낳는다” 등의 비판이 쏟아지자 대응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교육부가 수개월 안에 내놓기로 한 정책 중에는 사교육비를 끌어올릴 수 있는 정책이 다수 포진해 있다. 먼저 고교 1~3학년 성적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방안이 예고돼 있다. 오는 2025년 전면 도입 예정인 고교학점제는 성적 산출 방식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성취평가제’ 도입을 전제로 추진되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는 대입 제도 근간을 흔든다는 이유로 고1 성적만 상대평가로 유지키로 했었다. 하지만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지시로 교육부는 전 학년 성취평가를 검토하는 중이다.
고1 성적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든 상대평가를 유지하든 사교육 시장은 출렁일 것이란 전망이 많다. 고1 성적을 절대평가로 전환할 경우 내신 경쟁이 완화돼 자율형사립고(자사고) 등의 인기가 올라가게 된다. 자사고 입학을 위한 ‘고입 사교육’이 늘어날 수 있는 셈이다. 이는 현 정부의 고교 유형 다양화 정책과도 맞물려 있다. ‘입시 명문고 진학=명문대 진학’ 공식이 강화되는 것이다.
현행 상대평가를 유지하더라도 사교육이 유발된다는 게 입시 전문가들 예상이다. 고2~3은 절대평가, 고1은 상대평가가 되는 기형적인 제도가 만들어지면 결국 고1 성적이 대입 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현재도 전체 초·중·고 학년 중 고1 학부모들이 가장 많은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상황이다.
2028학년도 대입 개편 초안도 상반기에 발표된다. 교육부는 상반기에 초안을 내놓고 국가교육위원회 논의와 여론 수렴을 거쳐 내년 2월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대입제도 개편은 기본적으로 학교 현장의 불확실성을 높인다. 문재인정부 초반 불거진 대학수학능력시험 절대평가 전환 검토와 수시·정시 논란 등 입시 정책 혼란이 사교육비 부담을 끌어올렸다는 게 현 교육부 분석이었다. 문·이과 통합형 수능에 따른 ‘문과 침공’ 수정 대책도 학생·학부모의 불안을 자극할 수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의대 정원 확대 역시 사교육 시장을 자극할 가능성이 큰 정책이다. 한 입시 전문가는 “의대 진학을 목표로 재수생이 유입되는 상황에서 사교육 업체들의 ‘공포 마케팅’이 먹힐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