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예상대로 자당 의원들을 총동원한 방어전을 폈다. ‘2·27 1차 전투’에선 검찰이 날린 구속영장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성공은 했지만 승리는 아니다. 169명 단일대오로 싸움에 임한 줄 알았는데 드러난 현실은 체포 찬성 139표 대 반대 138표.
이 대표를 “100만원짜리 휴대폰을 주인 몰래 10만원에 판” 영업사원에 빗대며 구속 당위성을 역설했던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체포동의안 부결에 유감을 표했지만 속으론 만족한 결과라 여겼을 것 같다. 이 대표가 두른 방탄 성곽이 예상외로 헐겁다는 점을 확인했으니. 수사가 검사와 피의자 간 기 싸움과 수읽기 성격도 띤다는 점에서 이날의 승자는 검찰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국회 본회의 가결로 이 대표가 판사에게 구속 심사를 받는 상황은 검찰로서도 손에 땀을 쥘 일이었다. 수사 착수 이후 1년5개월, 정권 교체 후 7개월여 재수사를 통해 그를 의혹의 정점으로 규정한 이상 검찰도 구속 수사 외에 다른 길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국회도 통과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된다면? 제1야당 대표로서 도주 우려가 없고, 장기간 수사로 증거인멸 우려가 적으며, 혐의에도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이 대표 항변이 통했다면? 상상하기도 싫겠지만 이 경우 검찰은 여타 영장 기각 때와는 차원이 다른 역풍에 직면했을 터다. 당장 야당 탄압론에 불이 붙고 이 대표를 겨누던 모든 수사가 동력을 잃으면서 검찰 지휘부 책임론과 함께 민주당 주도의 검찰개혁 바람이 다시 거세지는…. 어디까지나 구속영장이 국회에서가 아니라 법원에서 막혔을 경우를 가정해 본 것이다. 그만큼 이 대표 구속영장 청구는 검찰에도 건곤일척의 승부수였다.
한바탕 태풍이 지나간 뒤의 소강상태 분위기지만 이 대표 수사는 지금도 계속되는 중이다. 주도권은 여전히 검찰이 쥐고 있다. 머지않아 이 대표와 민주당 앞에 다시 구속영장을 내밀며 ‘이번에는 어떻게 응수하시겠나’고 물을 거란 관측도 많다. 검찰의 향후 선택지를 예상해 보면 우선 대장동·위례 사업의 경우 이 대표를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잔불 정리에 들어갈 공산이 크다. ‘428억원 약정설’이 남아 있지만 같은 뿌리의 혐의를 추가해 불체포특권이 작동된 현역 의원을 상대로 구속영장을 재청구하기란 쉽지 않고 전례도 없다는 걸 검찰도 안다.
변수는 나머지 수사들이다. 백현동 사업 및 정자동 호텔 특혜 개발 의혹, 쌍방울 불법 대북송금 의혹 등이 여러 검찰청에 걸려 있다. 검찰은 대장동·위례 사건을 먼저 떨어낸 뒤 남은 사건 수사 경과에 따라 체포동의안을 다시 내밀지를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
수사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지만 이 대표에 대한 추가적인 구속영장 청구는 신중했으면 한다. 꽃놀이패인 것 같지만 자칫 패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병 확보에 나섬으로써 수사상 얻을 수 있는 효과나 사법 정의 구현이라는 측면도 고려해야 겠지만, 그에 따른 리스크와 부담 역시 1차 구속영장 때보다 몇 배 커질 거란 얘기다. 민주당 측이 사활을 걸고 검찰과 정권을 향한 공세·압박에 나설 것도 자명하다. 검찰 수사가 정국 상황에 휘둘리거나 정치권 눈치를 봐서는 안 되겠지만 이번 사안의 성격상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진행되기도 어렵다. 여기에 수사를 대하는 여론은 변화무쌍하다. 안 그래도 ‘검찰 정부’ ‘검찰 정치’에 대한 반감 내지 견제 기류가 강해지는 듯한 상황이다.
대마를 잡아 승부를 결정짓는 불계승도 짜릿하지만 승기를 잡은 뒤 안정적 행마로 계가를 통해 이기는 방법도 있다. 수사의 종착지가 반드시 구속일 필요도 없다. 확실한 건 검찰과 이 대표 간 싸움의 결론은 결국 법원의 유무죄 판결까지 가서야 판가름 날 거란 점이다.
지호일 사회부장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