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건설 현장의 불법·부당 행위를 근절하겠다며 연일 ‘건설노조 때리기’에 나서고 있지만 월례비나 불법 하도급 등 고질적 문제는 여전하다. 지난 정부에서도 건설 현장의 불공정을 없애겠다며 여러 대책을 내놨지만 관행은 반복되고 있다. 오히려 윤석열정부에서는 원청 업체보다는 노조에 대한 책임과 처벌을 강조하고 있어 노정 간 갈등이 더 커지는 모양새다.
지난달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건설현장 불법·부당 행위 근절 대책’에는 노조 전임비나 월례비 등 부당 금품 근절, 외국인 채용 규제 개선, 불법 하도급 단속 강화 등이 담겼다. 이는 문재인정부 당시인 2018~2019년 발표한 대책과 큰 차이가 없다. 국토부가 2019년 6월 건설노조와 대한전문건설협회, 대한건설협회 등과 함께 체결한 ‘노사정 협력 약정서’에는 월례비 등 부당금품 요구·지급, 공사 방해, 불법 하도급 등 건설 현장의 불합리한 관행을 근절하겠다고 쓰여 있다. 이런 관행들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건설 현장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정부가 포장만 다르게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정부에서는 건설산업의 정책 목표로 ‘공정 산업’ ‘일자리 혁신’ 등을 제시했고, 이번 정부는 ‘건설현장 내 진정한 노사법치의 확립’을 내걸었다. 원청 업체의 책임을 대하는 태도도 정반대다. 지난달 국토부가 내놓은 대책에는 원청 업체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은 담겨 있지 않다. 이 때문에 건설노조에서는 “노동자를 겁박할 것이 아니라 건설사에 월례비의 대가로 진행됐던 위험 작업을 시키지 말라고 해야 하며, 이를 어길 경우에 대한 처벌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건설업계에서도 월례비를 원청사가 아닌 하도급사가 내는 상황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한 철근·콘크리트 업체 대표는 8일 서울 동작구 전문건설회관에서 열린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 실태 고발 증언대회에서 “타워크레인은 원도급사 지급 장비고, 여기에 들어가는 추가 비용은 원도급사와 임대사업자 간 해결할 문제임에도 오버타임(OT) 비용이나 월례비를 하도급사가 지급하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건설업계 관계자도 “하도급 문제는 수십년 동안 풀리지 않는 숙제인 만큼 정부가 노사 문제뿐 아니라 원청과 하도급 문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참석한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정부가 나서기 전에 원청부터 책임을 다할 것을 촉구하며, 앞으로 (정부 정책도) 그런 방향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세종=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