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섭리 타락 계시’(대한기독교서회)는 기념비적인 저작이다. 세계 신학계가 주목하는 한국인 조직신학자, 김동건 영남신학대 교수가 생명의 에너지를 끌어모아 848쪽으로 펴냈다. 21세기 과학의 시대에 창조를 어떻게 해석할지, 우리의 삶과 역사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섭리를 경험하고 참여할지, 악은 왜 발생했고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혼란의 시대에 어떻게 계시를 인식하고 응답할지를 논한다. 영문 참고문헌만 400권 가까이 인용된 방대한 저술이다. 놀라운 건 이런 ‘벽돌책’이 앞으로 네 권 더 나올 예정이란 점이다. 2권 성령, 3권 교회, 4권 인간, 5권 구원과 종말을 다룰 이른바 ‘창조에서 종말까지’ 5부작이 준비되고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을 능가하는 21세기 신학대전이다.
김 교수는 젠틀하면서도 꼿꼿하다. 자신의 신상이나 안부 말고 오로지 책만 기사에서 주인공이길 바랐다. 지난 2일 대구 수성구의 아신신학연구소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아신(芽信)은 ‘복음의 씨앗’이란 뜻이다. 연구소 벽에는 ‘성경중심(聖經中心) 개혁신학(改革神學) 예언자정신(豫言者精神)’이 한문으로 쓰여 걸려 있다. 김 교수의 선친인 김치영(1925~2000) 목사의 유묵이다. 선친은 미국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 침례신학대학원에서 유학하고 계명대 동산의료원 원목실장과 부산장신대 학장을 지냈다. 연구소엔 부자(父子) 신학자의 영혼이 담긴 책들이 남아있다. 연구소의 박사급 연구원과 제자 목회자들이 숨죽이며 지켜보는 가운데 김 교수와 문답을 나눴다.
-책은 창조를 말하며 현대의 우주과학인 빅뱅우주론 정상우주론 다중우주론 등을 살핍니다. 신학자가 우주생성이론까지 공부하기는 어렵지 않습니까.
“신학자와 목회자는 과학의 발전에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20세기 이후 세계관과 우주관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분야는 과학입니다. 과학은 인류의 출현 생명 진화 그리고 무한한 우주와 우주의 기원에 대해 상당한 호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과학은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교육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신학은 과학의 발전을 유심히 살펴보고 과학에 대해 이해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동시대와 대화성을 상실한 주된 이유 중 하나는 과학과의 관계 설정을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교회가 과학을 갈등의 관계로 규정하면 당장 기독교인 학생들은 교회와 학교, 교회와 사회 사이에서 어떤 가치를 따라야 할지를 혼란스러워합니다. 결국 기독교인의 사고는 교회와 사회 사이에서 이원화되는 것이죠.
이번 책 ‘창조 섭리 타락 계시’의 창조론에선 먼저 교회와 과학의 관계를 설정합니다. 물론 과학과 신학은 동일한 실재, 곧 인간, 생명의 탄생, 우주의 기원 등에 관해 다른 설명을 합니다. 저는 과학과 신학이 하나의 실재에 대해 서로 다른 다차원적인 해석을 통해 상호보완적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신대원에서 최신 신학, 현대 신학을 가르치는데 목회자가 될 대학원생들에겐 매달 ‘뉴턴’이나 ‘과학동아’ 정도는 꼭 읽으라고 주문합니다. 웹툰 보고 유튜브 보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말이죠. 목회자에게 자연과학과 사회학적 지식은 성도들과 대화하는 데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책은 동시대와의 대화 속에서 창조론 섭리론 신정론 계시론 등을 풀어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손꼽히는 위대한 신학일지라도 21세기에 이해될 방법으로 해석되지 않으면 그 신학은 현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인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신학은 그 시대의 언어로, 그 시대의 관심을 반영하면서, 그 시대의 기독교인들과 대화할 방법으로 성서의 주제들을 해석해야 합니다.
12~13세기 스콜라 시대의 신학은 대단히 뛰어났고 그중에서도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은 아주 훌륭한 신학이었습니다. 당시 교회는 이를 뛰어넘는 신학이 쉽게 나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14세기 이후 르네상스가 일어났고 뒤이어 화약 나침반 인쇄술이 발명됩니다. 시대정신이 크게 변화했는데 스콜라 신학은 기독교인에게 의미 있는 성경 해석을 줄 수 없었습니다. 당시 신자들은 답답했습니다. 교회와 사회의 가르침은 완전히 이원화되었고 교회의 가르침대로 살 수 없었습니다. 교회의 선포에서 살아있는 하나님이 매개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냥 스콜라 시대 신학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종교개혁가들의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이것이 16세기 종교개혁이 일어난 근본 이유입니다.
지금은 종교개혁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시대정신이 크게 변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사고하는 틀, 즉 세계관과 우주관 자체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인간 생명 영원 죽음 부활 등 모든 개념이 새롭게 해석되고 설명되어야 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기독교 2000년 역사를 보면 신학은 끊임없이 성서를 새롭게 해석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개념과 언어로 성서를 해석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동시대인과 대화성을 상실합니다. 지금의 21세기가 그런 시대입니다. 창조에서 종말까지 5부작을 통해서 신학의 주요 주제를 새롭게 해석하고자 합니다. 독자들께서 모두 저의 해석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우리 시대 기독교의 핵심 주제들에 관해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누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한국교회가 어렵습니다. 교단과 교파로 갈라져 함께 대화하려는 시도 자체가 줄고 있습니다.
“기독교 자체가 위기에 처했습니다. 기독교 내에서 진보와 보수 논쟁은 이제 진부해졌고, 많은 기독교인의 관심을 벗어났습니다. 교회 자체가 외면받고 있는 이때 비본질적인 문제로 싸우는 건 참담한 일입니다. 모든 교파는 성서의 정신으로 서로 포용하고 힘을 모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교파에 매이지 않으셨습니다. 당시 유대교의 다양한 율법 해석과 종파에 치우치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은 궁금한 것이 많습니다. 창조와 진화는 조화를 이루는가. 악이 왜 발생했는가. 왜 무고한 자가 악에 희생되는가. 우리는 계시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교회는 더 근본적인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시대가 던지는 질문에 답하지 못할 때 교회의 가르침은 아무 생명이 없는 교리가 될 뿐입니다.”
대구=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