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Mentor). 국어사전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을 지도하고 조언해 주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뭔가 대단한 이력이 있어야 할 거 같다. 하지만 최근 경남 창원 삼성희망디딤돌 경남센터에서 만난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의 멘토들은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가 겪은 걸 나누기만 해도 도움이 된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멘티들도 “내 옆에 누군가 있는 거 같아 든든하다”고 했다.
대기업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고병찬(28)씨는 지난해 9월부터 경남센터에서 생활하는 서민우(21·가명)씨를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만나고 있다. 경남센터가 대기업 취업을 원하는 서씨를 고씨에게 소개했기 때문이다. 고씨는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막상 해보니 내 경험을 들려주고 민우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해도 큰 힘이 되는 것 같더라”고 했다.
고씨는 축구를 하면서 서씨와 친해졌다. 지금은 서씨는 멘토를 형이라고 부른다. 고씨는 간혹 카페에서 만나 서씨의 이야기를 들었고 자기소개서 쓰는 것을 도왔다. 그는 “민우가 경험한 모든 것을 쓰도록 했다. 그 경험이 민우에게 무기가 되게 하는 것이 자소서 쓰는 과정인 것 같다”고 했다.
지난달 전문대학 기계 관련 학과를 졸업한 서씨는 이제 본격적으로 취업 원서를 내고 있다. 서씨는 “대기업에 가면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복지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2021년 경남센터 자립체험관에서 1개월 간 생활해본 뒤 지난해 초 자립생활관에 입주했다. 서씨는 “처음 6개월은 외로워서 힘들기도 했지만 차츰 적응됐다. 서씨에게 꿈을 물어봤다. 그는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고 했다.
창원 지역아동센터에서 교사로 일하던 사회복지사 장소라(35)씨는 2021년부터 경남센터 소개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는 김희라(23·가명)씨를 만나고 있다. 장씨는 “희라는 말수가 적어서 친해지기 위한 시간을 가졌다. 공방에 가서 향수를 만들고 함께 영화를 봤다”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아동양육시설에서 자란 김씨는 자신을 돌봐주던 시설 생활지도원인 ‘이모’처럼 되고 싶었던 것이다.
김씨는 멘토 장씨를 만나면서 사회복지사가 하는 일에 대해 더 폭넓게 이해하게 됐다. 지난달 졸업한 김씨는 지난 1일부터 사회복지시설에서 계약직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김씨의 취업 소식을 들은 장씨는 “너무 좋다”며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2021년 7월부터 경남센터 자립생활관에서 지내는 김씨는 국을 끓여서 밥을 해먹는다. 혼자 지내는 게 힘들지 않은지 물었다. 김씨는 “힘들 때가 많다. 외로워서…”라며 눈물을 보였다.
그에게 자립을 위해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물었다. 김씨는 “내 고민이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항상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립준비청년들은 자기 삶에 관심 갖는 친구 같은 어른, 멘토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이 생활하는 삼성희망디딤돌은 2013년 삼성 임직원들의 기부로 시작한 삼성의 사회공헌(CSR) 활동이다. 자립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미래준비에 집중하도록 주거 공간과 다양한 교육프로그램 등을 제공한다. 그동안 1만7000여명이 주거와 교육 혜택을 받았다.
■ 동네 멘토가 되는법… 카페 ‘온은’ 사장님 이야기
“방학 때마다 티 클래스 진행… 누나라고 불러줘요”
“방학 때마다 티 클래스 진행… 누나라고 불러줘요”
자립준비청년들의 ‘동네 멘토’가 되는 이들이 있다. 자립준비청년들과 인근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가깝게 지내는 것이다. 삼성희망디딤돌 경남센터 근처에서 티 카페 ‘온은’을 운영하는 이정원(30)씨가 그런 경우다. 그는 방학 때마다 자립생활관에 단기 체험을 하러 온 친구들을 위해 티 클래스를 진행한다.
이씨는 최근 경남 창원 온은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차에 관해 설명하고 함께 차를 마시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면서 “동네 이웃으로 만나다 보니 청년들이 나를 아주 편하게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카페에서 경남센터 개소식을 연 걸 계기로 티 클래스를 시작했다. 청년들은 그를 대개 ‘누나’ ‘언니’라고 부른다.
그는 자립준비청년을 편견 없이 보려 한다. 이씨는 “우리가 아는 10, 20대와 다르지 않다. 간혹 시설에서 자랐으니 성격이 모났을 거라 생각할 수 있는데 내가 봤을 땐 더 착하면 착했지 못된 친구들은 없다. 나는 각자 있는 그대로 보고 만난다”고 했다.
덕분에 자립준비청년들은 티 클래스 후에도 카페를 자주 찾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이씨는 “간혹 남자친구나 여자친구를 데려와서 소개해주는 청년도 있다”며 미소 지었다. 그야말로 친근한 동네 언니나 누나의 모습이다. 이씨는 2021년부터 지금까지 19차례 티 클래스를 진행했다. 삼성희망디딤돌 전국 10개 센터는 이렇게 다양한 멘토를 청년들과 연결하고 있다. 삼성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임직원 멘토를 모집할 예정이다.
창원=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