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찾는 십자가 앞에 앉으면 어느새 구도자

입력 2023-03-11 03:03 수정 2023-03-11 03:03
경북 경산의 하양무학로교회는 사각의 공간을 창도 없이 벽돌로 만들었다. 천창으로 들어오는 빛, 빛을 받아 그림자를 드리우는 십자가는 구도자의 마음으로 예배하게 만든다. 경산=신석현 포토그래퍼

벽돌로 쌓은 사각의 공간은 창 하나 없다. 회중석에 앉으니 시선은 위로 향한다. 천창으로 빛이 들어오고, 그림자를 드리운 십자가로 눈이 간다. 예배당에 들어서는 순간 구도자의 마음을 갖게 하는 공간, 경북 경산시 하양무학로교회(조원경 목사)를 지난 3일 찾았다.

건축, 시작하다

성도 30여명인 교회는 2019년 5월 완공된 뒤 1만50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녀갔다. 교회를 설계한 이와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발걸음을 이끌었다. 대한민국 대표 건축가 승효상(71) 이로재 대표가 설계한 것도 놀라운데 건축 비용이 7000만원이라는 점도 놀라웠다.

무학로교회는 조원경(66) 목사가 1986년 대구제일감리교회의 도움을 받아 개척했고 약 99㎡(30평) 크기로 지어 가난한 이들을 도왔다. 아동센터, 국수 나눔 등을 하면서 부지는 350평이 됐다. 가건물처럼 패널로 만든 교회는 마음의 빚이 됐다. 건축에 힘을 보탠 건 대구교육청 공립유치원장으로 은퇴한 황영례(60) 장로다. 조 목사는 “교회가 건축을 생각하지 않을 때부터 건축 헌금을 했다”고 설명했고, 승 대표는 “교회 건축을 잘 말해 줄 분”이라고 소개했다.

황 장로의 헌금을 포함해 모은 건축 예산은 7000만원이었다. 조 목사는 지역 문화 관련 세미나에서 만난 승 대표를 찾아갔다. 대화하며 교회 공간에 대한 생각이 같다는 걸 알았다. 영적 위로를 받으며 도시에 집중된 문화 불균형을 해소하는 곳이 교회라 생각했다. 그리고 건축비를 얘기했더니 승 대표가 덜컥 “하겠다”고 답했다.

교회는 건축 허가 등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15평 이하로 짓기로 했다. 그렇게 건축이 시작됐다.

교회 설계도. 이로재 제공

모습을 담다

승 대표의 무료 설계 소식에 대구의 벽돌전문업체가 벽돌을 제공하기로 했다. 덕분에 노출콘크리트였던 첫 설계는 지금의 형태가 됐다. 돈 들여 사야 할 강대상 등도 벽돌로 만들었고, 교회 관리는 용이해졌다. 4000장 정도로 예상한 벽돌을 10만장이나 썼다.

무학로교회의 낮은 담장은 세상과 교회를 연결한다. 야외 예배당과 교회 그리고 2m 넘는 담장에 쌓인 옛 교회건물이 보인다. 경산=신석현 포토그래퍼

승 대표는 “교회만 있으면 어떡하냐”며 마당도 설계했다. 벽돌로 의자와 강대상을 만든 야외 예배당은 낮은 담장 밖에서도 보여 안팎의 경계를 허물었다. 건축헌금을 낸 조계종 은해사의 기념식수 느티나무도 멋스럽게 자리했다.

교회 앞엔 마당과 30년대와 60년대 지은 건축물이 마주한다. 모두 교회 식당과 화장실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가을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와 함께 찍었다. 하양무학로교회 제공

낮은 담장을 넘어 교회로 들어와 색을 달리한 벽돌길을 따라가면 마당이 보인다. 은행나무와 까치집, 그 아래 평상까지 영락없는 시골집 마당이다. 하지만 마당을 둘러싼 교회 건물들을 황 장로는 “대한민국 건축 역사”라고 귀띔한다.

350평 한켠에 15평 크기로 자리한 교회와 야외 예배당, 옛 교회 건물, 식당과 화장실로 쓰는 옛 건축물이 있다. 경산=신석현 포토그래퍼

건축은 헌 땅에 헌 건물을 고쳐 써야 한다는 승 대표 건축 철학이 엿보인다. 교회 식당으로 쓰는 건축물은 1936년, 누에 치는 곳에서 화장실과 조 목사 사무공간이 된 건축물은 1960년에 각각 지었다. 1986년 세운 옛 교회는 2m 넘는 담장이 둘렀다. 황 장로는 “높은 담은 어머니 같은 무학로교회의 허름한 모습을 감추면서 모든 걸 품는다”고 설명했다.

마당으로 돌아와 벽돌길을 따라가면 비로소 무학로교회 예배당 입구가 나온다.

영성의 공간이 되다

지금도 ‘건축으로 신학하는 사람’이라 말하는 승 대표는 건축 중 교회 건축이 가장 어렵다고 말한다. 무학로교회를 지을 때 고민한 건 ‘영성’이다.

6일 만난 승 대표는 “우리나라는 집 안에 위로의 공간을 넣기 어렵다. 교회가 그런 역할을 대신해야 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회 건축의 원칙을 세웠다. 교회는 어디에나 계시는 하나님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부름받은 성도들을 위한 공간이니 장식은 배제하고 묵상하며 위로받는 공간이 되도록 했다.

예배당으로 들어가려면 물을 건너야 한다. 황 장로는 “세상에서 요단강을 건너 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2019년 5월 헌당예배는 유교 천주교 불교계 인사들이 함께하면서 종교 화합의 장을 만들었다. 하양무학로교회 제공

좁은 복도는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길인 만큼 하늘을 볼 수 있도록 덮개를 두지 않았다. 복도 반대편을 뚫어 바람길도 만들었다. 힘껏 밀어야 할 정도로 묵직한 검은 철제문은 세상과 하나님의 집을 구분한다. 예배당에 들어서니 8m 위 천창에서 빛이 들어온다. 유명세만 듣고 교회를 찾았다가 위로를 경험하기도 한다. 승 대표는 “함께 교회에 온 믿음 없는 지인이 예배당에 앉아 눈물을 흘리더라”고 전했다.

십자가도 남다르다. 로마 시대 십자가처럼 가로선과 교차하는 세로선 상단이 짧다. 외벽 십자가도 비슷하다. ‘얇은 알루미늄 십자가라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더니 승 대표는 “마음으로 찾는 십자가가 돼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벽돌 강대상은 회중석과 높이가 같다. 예배당의 유일한 장식은 강대상 양옆에 한 성도가 들꽃과 나뭇가지로 꾸미는 화병이다. 지금은 지난해 12월 챙겨뒀다가 싹을 틔운 생강나무 가지로 꾸몄다. 회중석과 목회자 의자는 승 대표가 직접 설계하고 목수가 참죽나무를 이용해 끼워맞추는 방식의 ‘결구식’으로 만들었다. 예배당 앞 굴뚝으로 보이는 원통 벽돌 구조가 눈길을 끈다. 원통 뒤편이 기도 공간인 이곳을 ‘야곱의 사다리’라 부른다.

건축적 요소도 눈길을 끈다. 벽 두께는 43㎝나 된다. 승 대표는 “원래 벽 두께다. 내부 구조벽, 외부 치장벽, 방수와 단열까지 하면 40㎝”라고 설명했다. 벽돌 반원형 천장은 소리의 난반사를 막는다. 예배당을 나와 옥상으로 오르면 또 다른 십자가와 마주한다. 전면 벽의 가운데가 길게 뚫려 벽의 가로선과 맞닿아 T자형을 만든다. 십자가 위 세로선을 대신하는 건 하늘이다. 고개를 들어 십자가를 바라보다 고개 숙여 기도하게 된다.

옥상엔 하늘과 맞닿은 십자가를 바라보며 묵상하는 공간이 나온다. 십자가 앞에서 황영례 장로가 기도하고 있다. 경산=신석현 포토그래퍼

불편함도 있다. 참죽나무 의자는 딱딱한 데다 등받이는 낮고 경사져 기댈 수 없다. 황 장로는 “곧은 자세로 경건하게 예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버겁다. 일반적인 계단 높이인 16~18㎝보다 높은 22㎝다. 승 대표는 “옥상의 기도 공간에 가기 전부터 조심스럽고 힘들게 계단을 오르면서 이미 기도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교회, 문화 공동체가 되다

친구들과 대구에서 온 도신은(32)씨는 “기도하는 공간, 예배하는 공간이라는 얘기를 듣고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회 맞은편 ‘공간 물볕’으로 향했다. 황 장로가 대표인 이곳은 교회와 함께 지역을 문화 집성체로 만들고 있다.

교회 맞은편 ‘공간 물볕’은 카페 책방 갤러리로 꾸며 교회와 함께 지역을 문화 집성체로 만들고 있다. 사진은 물볕카페다. 경산=신석현 포토그래퍼

원래 황 장로는 오래된 집 세 채를 건물로 지어 임대 수익으로 헌금하며 살고 싶었다. 승 대표에게 설계를 의뢰했더니 “뭐 짓고 싶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황 장로는 “의미 있게 살 수 있는 건물을 지어 마을을 변화시키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했더니 승 대표가 흔쾌히 수락했다.

두 달 뒤 승 대표가 가져온 설계도는 예상을 빗나갔다. 한 채는 그대로 두고 나머지 두 채만 새로 짓는 데다 교회보다 낮은 1층이었다. 교회 부대시설 개념으로 카페 책방 갤러리로 꾸미자는 제안도 했다. 망설이는 황 장로의 결심을 바꾼 건 승 대표가 보낸 카톡 한 문장이었다. “마을이 달라질 겁니다.” 건축가이자 승 대표 아들인 승지후(107디자인워크숍)씨도 힘을 보탰다.

벽돌담을 넘어 물볕으로 들어서니 예상 밖 공간이 나온다. 중정의 수반에선 물소리가 들린다. 책방은 볕 잘 드는 서재 같고, 옛 건물 내부만 바꾼 갤러리엔 작품이 걸려있다. 커피 향 나는 카페는 통창과 천창으로 빛이 들어온다.

‘하양’의 순우리말인 ‘물볕’이란 이름도 승 대표가 만들었다. “물에 내린 햇볕이니 볕내가 못내 향기롭고 볕살이 참 따스할 게 분명하지 않은가”라는 풀이를 더했다. 곳곳에 쓰이는 물볕 글씨체도 이채롭다. ‘물’은 흐르는 물결이 느껴지고 ‘볕’은 햇빛이 들어있다. 승 대표 솜씨다. 무학로교회는 물볕과 함께 영성회복 플랫폼을 구축하기 위한 하양영성스테이를 준비하고 있다.

경산=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