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법치주의 개혁의 효능

입력 2023-03-09 04:05

법치와 3대 개혁은 윤석열정부를 상징하는 대표 브랜드다. 정부는 이를 통해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야당에 끌려다닐 게 뻔한 법제도 개혁보다는 당장 실행할 수 있고 여론 주목도가 높은 법치주의로 개혁의 선수를 잡게 됐다. 정치적 지지와 개혁 동력도 모았으니 일거양득인 셈이다. 더구나 대통령 자신이 자유와 법치는 헌법 정신이자 시장경제의 초석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는 터여서 국정의 핵심 가치로 굳어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나 탈북 어민 강제북송의 책임을 따질 때, 관계부처 장관에게 건설 현장의 ‘건폭’이나 교육 현장의 ‘학폭’을 근절하라고 지시할 때, 판단 기준은 모두 법치의 확립이었다.

우리 사회는 당연히 법치의 토대 위에 있어야 한다. 새삼스럽게 법치주의가 개혁의 화두가 된 이유는 ‘촛불정부’가 그 기초를 크게 흔들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북한이나 노동사회단체와의 관계에서 정부가 정부답게 행동하지 않았고, 법과 예산의 집행에서도 진영에 따라 잣대를 달리했다고 본다. 여러 이슈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와 사정 당국의 수사가 이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윤석열정부의 정체성이기도 하고 정권 탄생의 정당성과 관련된 문제라서 쉽게 바뀌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노동개혁의 최우선 과제로 떠오른 법치주의 노사관계는 다른 맥락에서 따져볼 필요가 있다. 당초 정부의 노동개혁 목표는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격차 완화였다.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된 의제였고 대통령도 여러 차례 강조했던 바다. 그러나 고용노동부가 작년 말 전문가 연구회를 내세워 마련한 노동개혁안은 국민적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근로시간의 유연화만 돋보일 뿐 노동시장의 과도한 격차나 구조적 불공정에 대한 해법은 빠진 반쪽짜리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추진 전략도 허술해 보였다. 윤석열정부의 대표 상품으로 밀고가기에는 완성도가 떨어졌던 셈이다. 이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은 이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넘겨 포괄적인 노동시장 구조개혁 패키지로 키워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장의 행동과 가시적인 성과가 필요했던 정부는 법치주의 개혁부터 시작했다. 정부로서는 작년 6월 이후 거듭되는 민주노총의 집회와 시위, 연대 파업이라는 정치적 도전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화물연대의 파업과 건설노조의 채용 강요, 작업 방해, 조합비 횡령 사건들이 터지자 정부는 법치의 기준으로 노사관계를 바로잡겠다고 나섰다. 문재인정부의 일관된 친노동 자세와 민주노총의 투쟁 만능 행태에 지쳐 있던 국민 여론이 적극 호응했고 정부는 크게 고무됐다. 그렇다고 노조를 때리니까 대통령 지지도가 올라간다는 세간의 평가에 현혹돼서는 안 된다. 법치주의 노사관계가 노동개혁의 최종 목표가 돼서도 안 된다.

노조의 불법과 비리를 척결하는 것은 당연한 정부의 책무이지만, 정부가 이에 그치지 않고 노동개혁의 이름으로 법을 내세워 모든 노조를 상대로 약점 잡기와 힘 빼기에 나선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렇게 되면 불필요한 갈등만 키울 뿐 노동계의 자기 혁신과 자정 노력을 유도하기 어렵게 된다. 노조 회계 문제만 하더라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실질적 노력보다 자료 제출을 둘러싼 소모적 공방과 법적 분쟁만 커지고 있다. 갈 길이 바쁘다며 정부가 일방적으로 상생임금위원회를 만들고 근로시간 개정안을 발표하면 노동계는 건설적 대안보다 반대 투쟁을 외칠 수밖에 없게 된다. 정부가 건설 현장의 월례비 관행 근절을 천명하자 타워크레인 기사들이 연장근로를 거부하고 준법투쟁을 벌이는 것도 같은 맥락에 있다.

정부는 노동개혁의 당초 목표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법치는 노동개혁의 한 부분일 뿐 노동시장의 구조적 왜곡을 바로잡는 종합 처방은 아니다. 불법과 잘못된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외과적 수술을 하더라도 노조 스스로 변하고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그 효과는 일시적이다. 노동시장의 제도와 규범을 혁신해야 노조도 변하고 개혁도 성공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이해관계자들의 공감과 동참을 이끌어내기 위해 진력해야 한다. 그래야 노동법 개정도 가능하다.

학폭에 대한 엄벌주의가 학교생활의 사법화를 가속할 수 있듯이 노사 법치주의가 노사정 협력 기반을 망칠 수 있다. 타협이 본업인 정치를 법치로 대체할 수 없듯이 대화와 타협을 위해 설계된 노동관계를 법치로 대신할 수 없다.

최영기(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