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통영은 발길 닿는 곳마다 문인들의 예술혼을 느낄 수 있다. 한국문학의 대모 소설가 박경리, ‘꽃의 시인’ 김춘수, ‘깃발의 시인’ 청마 유치환 등 많은 문인이 통영 출신이다. 이들을 기념하는 시비와 거리, 전시관 등이 곳곳에 조성돼 있다.
박경리(1926∼2008)가 태어난 곳은 옛 충무시 명정리다. ‘서피랑’으로 잘 알려진 서호마을이다. 이곳에 그의 생가가 있다. 통영의 풍광과 함께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려갔던 어머니의 이야기는 박경리에게 문학적 토양이 됐다.
일대는 박경리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의 무대이기도 하다. ‘토지’ ‘파시’ 같은 소설에 통영은 끊임없이 등장한다. ‘김약국의 딸들’ 제1장 ‘통영’에는 ‘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이다. (중략)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고 한다. (중략) 벼랑가에 얼마쯤 포전(浦田)이 있고, 언덕배기에 대부분의 집이 송이버섯처럼 들앉은 지세는 빈약하다’고 묘사돼 있다. 서피랑 언덕 정상의 서포루에서 보는 풍광이 일품이다. 통영 시내와 바다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박경리는 30대 초 상처를 입고 통영을 떠난 뒤 2004년 11월 50년 만에 처음 고향 통영을 찾았고, 2008년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미륵도 언덕에 묻혔다. 묘소 인근에는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는 ‘옛날의 그 집’ 시비가 세워져 있다. 고인을 추모하는 박경리 공원 바로 아래 박경리 동상과 기념관이 자리잡고 있다.
전시실에는 그의 대표작 ‘토지’의 친필원고와 등장인물 관계도, 소설 ‘김약국의 딸들’의 주요 무대인 안뒤산을 중심으로 한 통영의 옛 모습을 복원한 모형, 일대기를 파노라마처럼 볼 수 있는 그래픽이 있다. 쪽진머리와 수수한 한복차림의 젊은 시절 사진과 어록, 작가가 직접 만든 누비저고리 옷, 평소 집필하던 강원도 원주의 서재를 재현해 놓은 방도 마련돼 작가의 삶과 흔적, 문학세계를 세밀하게 살펴볼 수 있다.
한려해상국립공원 동부사무소 건물을 리모델링한 김춘수 유품전시관에서는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고 노래한 김춘수(1922∼2004)의 육필원고 126점과 8폭 병풍 서예작품, 액자, 사진을 비롯해 생전에 사용하던 가구와 옷가지 등 330여점을 만날 수 있다. 지우고 또 지우면서 쓴 습작노트는 시인의 고뇌와 숨결을 느끼게 해준다. 청마 유치환 부부의 결혼 때 화동(花童)을 했던 김춘수는 통영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1947년 첫 시집 ‘구름과 장미’를 출간한 이후 82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의미의 시’라는 새로운 시론을 비롯해 20권이 넘는 시집을 출간했다.
유치환(1908∼1967)의 문학 정신을 보존·계승·발전시키기 위한 청마 문학관은 망일봉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초가집 생가도 복원돼 있다. 문학관에는 청마의 유품 100여점과 문헌 자료 350여점이 전시돼 있다. 청마의 생전 숨결과 체취를 입체적으로 느끼면서 고결했던 삶과 치열했던 문학정신을 총체적으로 만날 수 있다.
청마거리도 조성돼 있다. 청마가 젊은 시절 시조시인 이영도에게 수천 통의 연애편지를 보낸 곳으로 유명한 ‘통영중앙우체국’은 그의 숨결을 간직하고 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쓴다’라는 내용의 ‘행복’이 새겨진 시비를 거쳐 100m 정도 걷다보면 시조시인 김상옥(1920∼2004)의 호를 따라 지어진 초정거리와 마주친다. 통영의 명동으로 불렸던 항남 1번가, 오행당 골목 입구부터 보경유리상회까지 180m 구간에는 시인의 생가터와 표지석, ‘봉선화’가 새겨진 벽면과 의자에 앉아 무언가를 생각하는 초정의 좌상 등을 마주할 수 있다.
김상옥은 15세 때 금융조합연합회 신문 공모에 동시 ‘제비’가 당선된 후 시조집 ‘초적’ ‘목석의 노래’ 등을 펴냈다. 김상옥은 부인이 사망하자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며 슬퍼하다 닷새 후 부인을 따라가는 가슴 시린, 지독한 사랑으로 생을 마감했다.
통영=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