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상담사 발음 평점 깎아요”

입력 2023-03-08 04:05
국민일보DB

“이제는 AI(인공지능)가 상담사 발언을 감시해 평가 점수를 매깁니다.” 최초아(39) 국민은행 콜센터 메타엠지회 지회장은 7일 ‘지금 소희, 콜센터 사업장을 고발한다’ 기자회견에서 콜센터 직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알리며 이같이 말했다.

국민은행은 최근 고객 상담 내용 데이터화를 위해 AI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런데 원래의 취지와 달리 오히려 콜센터 직원들의 족쇄가 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최 지회장은 “처음엔 고객의 말들을 수집해 데이터화 하더니 나중엔 상담원의 말을 수집하기 시작했다”며 “시스템 오류로 미인식 되는 부분을 사측은 상담사 발음 문제라며 교육하겠다고도 하고 평가 점수를 깎기도 한다. 평가 점수는 인센티브와 연결된다”고 덧붙였다.

지난 2월 콜센터 현장실습생의 사망을 다룬 영화 ‘다음 소희’가 개봉하면서 콜센터 상담사 처우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영화의 배경이 된 실제 사건은 2017년의 일이지만 6년이 지난 지금도 콜센터 직원은 저임금과 전자감시, 무한경쟁 등에 시달린다. 화장실에 갈 수 있는 시간이 오전에 1번, 오후에 1번뿐이라는 곳도 있었다. 무급보건휴가를 사용하면 실적을 차감해 급여가 줄어들게 하거나, 실적이 저조하다며 부당한 지시를 하고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줘 결국 상담사가 퇴사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이들은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21년 발행한 ‘콜센터 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상담사들은 지나치게 많은 콜 수 등 실적압박, 업무에 대한 과도한 모니터링 등의 부당처우를 매월 5~6차례 경험한다. 조사 대상 상담사 절반가량은 경제적 어려움과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다”고도 답했다.

특히 은행 영업점 감소로 콜센터 직원들에게 전문성이 필요한 영업점 업무까지 요구되면서 부담은 더 늘었다고 했다. 그렇다고 이를 위한 제대로 된 교육이 제공되는 것도 아니었다. 현진아(42) 하나은행콜센터지회 지회장은 “교육이 부족한 탓에 민원이 발생하면 상담사들은 그저 ‘죄송합니다’만 외치고 있다”고 호소했다.

성윤수 기자 tigri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