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冬栢)은 혹한 속에서도 꽃망울을 터뜨린다. 동백꽃의 학명은 까멜리아(camellia)다. 경남 통영시 한산면 매죽리 장사도는 ‘까멜리아’라는 이름을 내건 해상공원이다. 10만 그루 동백이 봄의 향연을 펼치고 있다. 붉은 꽃이 파란 바다와 절묘하게 어울리는 ‘사랑의 섬’이다.
‘한려수도의 푸른 보석’ 장사도는 긴 뱀이 엎드려 있는 모양새다. 한자도 길 장(長)에 긴 뱀 사(蛇)를 쓴다. 또 다른 이름은 ‘늬비섬’이다. 늬비는 누에의 경상도 방언이다. 누에를 닮아 ‘잠사(蠶絲)도’라고도 불린다.
길이 1.9㎞, 폭 200~400m, 총면적 39만㎡의 아담한 섬에는 옛날 주민 80여명이 살았다. 1990년대 중반부터 사람들이 빠져나가면서 낚시꾼만 찾는 무인도가 됐다. 이후 7년간 공사를 거쳐 ‘장사도 해상공원 까멜리아’로 재탄생했다. 해발 100m에 불과하지만 16개의 전망대에 서면 비진도, 욕지도, 소매물도, 소지도, 대·소병대도 등 한려수도의 크고 작은 섬을 감상할 수 있다.
선착장에 닿으면 바위 위 인어상이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이어 동백나무, 후박나무, 소나무, 구실잣밤나무가 만들어낸 길을 오른다. 길옆에는 애기동백이 분홍빛 꽃잎을 활짝 열고 마중을 나왔다. 잘 닦인 산책로를 따라 비탈을 400m쯤 오르면 중앙광장. 그곳에는 ‘바다·섬·여인’이란 조각상이 누워 있다. 맞은편 바다에는 소이도가 떠 있다. 다른 이름은 미인도이다. 오뚝한 콧날, 볼록한 가슴, 접은 무릎까지 섬은 여인을 많이 닮았다.
발걸음을 옮기면 1968년 죽도국민학교 장사도 분교로 개교해 1991년 한산초등학교 장사도 분교로 폐교된 학교 건물이 나온다. 건물은 복원됐지만 운동장은 다양한 모양의 분재 전시 공원으로 꾸며졌다. 운동장 한쪽 옛날 말뚝박기 놀이를 하던 아이들을 형상화한 동상이 웃음직게 한다. 교실 앞쪽에는 2014년 인기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장면이 담긴 안내판이 서 있다. 순간 이동한 외계인 도민준(김수현 분)과 배우 천송이(전지현 분)가 사랑을 확인하는 장소다.
분교에서 북서쪽으로 향하면 주황색 무지개다리가 화사하게 반긴다. 수려한 바다 전망이 내다보이는 다리에선 방문객들이 기념사진을 찍느라 발걸음을 멈춘다. 다리를 건너면 ‘달팽이’ ‘승리’ ‘다도’란 이름이 붙은 전망대가 연이어 나타난다. 승리전망대는 한산도의 부속섬인 죽도를 비롯해 비진도와 용초도 등 통영의 여러 섬들이 파노라마로 펼쳐 보인다. 다도전망대를 뒤로 하고 다시 무지개다리 방향으로 가면 길은 다리 아래로 이어진다. 다리 밑에는 장사도해상공원 개발 과정을 담은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여정은 온실로 이어진다. 시원한 바다 풍광이 펼쳐지는 산책로에는 연인들의 기념촬영을 위해 커다란 흰색 하트 조형물 두 개가 마련돼 있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하트가 어우러진 풍경이 낭만적이다.
오줌 누는 소년상이 있는 인공폭포를 지나 온실로 들어서면 초록빛이 싱그러운 온대식물과 다양한 빛깔과 모양의 꽃들이 완연한 봄 분위기를 전한다. 온실을 돌아 나와 산책로를 따라가면 옛날 주민이 살았던 집을 깔끔하게 단장한 ‘섬아기집’이 나온다.
섬아기집 인근에는 장사도의 백미인 동백터널이 있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두 주인공이 대화를 나누던 60m 길이의 예쁜 공간이다. 붉은 동백이 꽃송이 째 툭툭 떨어져 바닥을 뒹군다. 드라마에서처럼 바닥을 장식할 정도는 아니지만 해가 잘 드는 가지에 매달린 동백꽃이 조명과 어우러져 화려한 자태를 자랑한다. 곧 붉은 카펫을 깔아놓은 듯 장관을 이루게 된다.
이어 다양한 공연이 진행되는 부챗살 모양 야외공연장이다. 다랑논처럼 꾸며진 1000석 규모 관객석 맨 뒤편에는 김정명 작가의 청동 조형작품 ‘머리12’가 서 있다. 커다란 청동 두상 12개는 종교, 성(性), 12지, 상(賞), 건물, 브랜드, 쓰레기 등 12가지 주제로 꾸며졌다. 주변은 메일로드다. 청마 유치환의 ‘행복’과 여류 시조시인 이영도의 ‘황혼에 서서’가 앞뒤로 새겨진 시비와 우체통이 놓여 있다. 청동상을 따라가면 부엉이전망대다.
반대편으로 가면 조그만 예배당을 만나게 된다. 1973년 장사도 분교 교사가 세운 교회다. 주민 80여명 중 70명이 다녔다고 한다. 커다란 유리창 밖으로 바다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카페테리아를 지나면 야외갤러리다. 산책로 주변 조형작품이 다양한 모습으로 눈길을 끈다. 이곳에서 가파른 길을 10여분 내려가면 선착장에 닿는다.
여행메모
통영에 속하지만 거제에서 가까운 장사도… 번호따라 효율적 2시간 탐방
통영에 속하지만 거제에서 가까운 장사도… 번호따라 효율적 2시간 탐방
장사도는 행정구역상 경남 통영에 속하지만 경남 거제에서 더 가깝다. 통영유람선터미널에서는 21.5㎞ 떨어져 40분 걸리지만 거제 근포항에서는 1㎞ 거리여서 10분 만에 닿을 수 있다. 출항 시간과 운항 횟수가 평일과 주말 등 상황에 따라 다르므로 사전에 확인해야 한다. 승선 요금도 평일 1만4000원, 주말 및 성수기 1만5000원으로 구분돼 있다. 장사도 입장료 1만원은 별도로 지불해야 한다.
장사도해상공원 체류 시간은 짧은 편이다. 타고 온 유람선을 그대로 타고 나가야 하기에 2시간만 주어진다. 탐방안내도 책자나 섬 곳곳에 표시된 번호 순으로 탐방하면 효율적이다. 입구 선착장과 출구 선착장의 위치가 다르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이라 섬 전체가 금연구역이자 청정구역이다. 뱀, 독충, 낙석 및 낭떠러지 등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지정된 탐방로를 이용해야 한다. 숙박 시설이 없기 때문에 숙박은 불가능하다.
거제 근포항으로 여정을 잡으면 청마 유치환이 1908년 태어나 3세까지 살았던 둔덕면 방하마을의 청마기념관에 들러볼 만하다.
장사도(통영)=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