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서 가장 많은 석탄화력발전소가 들어서 있는 충남은 수십년간 대한민국 전력공급의 중심지였다. 국내 발전량의 30% 이상을 공급할 정도로 관련 산업이 발전하면서 발전소는 지역경제를 책임지는 핵심시설로 거듭났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발전소 가동으로 발생하는 미세먼지, 송전선로나 대형 송전탑이 주민들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침해하는 문제가 꾸준히 발생했다. 특히 탈석탄과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이 전 세계적 화두로 떠오르면서 석탄화력발전소의 폐지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물론 석탄화력발전소 폐지가 마냥 긍정적 효과만을 불러오는 것은 아니다. 기존 발전소 노동자들의 고용 지속성에 문제가 생길 뿐 아니라 지역의 경기침체 역시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지자체 힘만으론 감당 어렵다
현재 전국에 운영중인 화력발전소는 58기다. 정부의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36년까지 총 28기의 화력발전소가 폐지될 예정이다. 지역별로는 충남 14기, 경남 10기, 인천 2기, 강원 2기 등이다. 절반이 충남에 밀집했다.
이들 14기 가운데 2025년에는 2기(태안), 2026년 2기(보령), 2028년 1기(태안), 2029년 3기(당진·태안), 2030년 2기(당진), 2032년 2기(태안)에 이어 2036년 2기(당진)가 폐지된다.
발전소가 폐지되면 석탄발전 지역은 극심한 경기 침체를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도는 생산유발금액 19조2000억원, 부가가치유발금액 7조8000억원, 취업유발인원은 7600명이 감소할 것으로 추정한다. 발전소를 보유한 지자체뿐 아니라 타 시·도에도 간접적인 경제적 파급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2020년 폐지된 2기를 포함해 충남에서만 총 16기의 발전소가 폐지됨에도 대체 건설되는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는 2기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충남도와 도내 15개 시·군은 특별법 제정 등 정부가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자체의 힘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기에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석탄발전 폐지지역 지원특별법’ 제정으로 경기 침체 완화를 위한 지원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석탄발전 폐지지역 진흥지구’를 지정하고 발전소 폐지지역이 자생적 성장 기반을 구축하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조원 규모의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기금을 편성해 대체산업을 육성토록 하는 한편 미래지향적 일자리를 위한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고도 했다. 조세 감면 및 교부세 확대, 탄소중립경제 연구원·탄소거래소 설치 등도 특별법에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태흠 충남도지사와 15개 시장·군수는 지난달 결의문을 통해 “석탄발전 폐지지역이 감내한 특별한 희생과 구체적인 지원방안 없는 탈석탄 정책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탄소중립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예상되는 피해와 부담을 사회적으로 분담해 정의로운 전환을 실현할 것을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석탄발전 폐지지역의 성장 촉진과 친환경 에너지 산업으로의 전환을 지원하기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강조했다.
특별법 제정한 독일 참고해야
일각에서는 법 제정을 바탕으로 탈석탄을 본격화한 독일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독일은 2018년 탈석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연방정부 산하에 석탄위원회를 설치하고 ‘탈석탄법’과 ‘석탄지역 구조강화법’ 등 2개 법안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탈석탄법은 무연탄·갈탄 발전설비를 2038년까지 3단계에 걸쳐 축소하는 것이 핵심이다. 전력생산자에게는 약 43억5000만 유로의 보조금을 지원하고, 노동자들의 고용조정을 위한 지원금 48억1000만 유로도 보조한다.
석탄지역 구조강화법은 석탄 폐지로 피해를 입는 지역의 재정·구조 강화를 위한 법안이다. 폐지지역 4곳을 지정해 400억 유로의 예산을 지원하고 신규·이전 기관을 30개 이상 설립하는 것이 골자다. 연방기관 설립 같은 행정적 지원과 함께 간선도로·철도 등 인프라 건설 등도 포함됐다.
독일 산업의 중심지이자 최대 갈탄 생산지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NRW)은 이 법을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3개의 노천광산과 4개의 갈탄발전소를 운영하는 NRW는 독일 연방주 가운데 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지역이다. 독일 정부는 석탄지역 구조강화법에 근거해 연방구조 전환기금 148억 유로와 함께 유럽연합(EU)의 정의로운 전환기금(JTF) 6억8000만 유로를 지원키로 했다. 또 EU 지역개발기금(ERDF)의 일환으로 14억8000만 유로를 지원하기로 결정하면서 중소기업 일자리 창출, 지속가능한 도시 개발 등 광범위한 경기부양책을 실현할 수 있게 됐다.
도는 올해 국회토론회와 정책간담회, 서명운동 등 특별법 제정을 위한 공론화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또 상반기 중 화력발전소 소재 시·도 지역구 국회의원들과 함께 힘을 모아 특별법안을 발의하도록 만든다는 계획이다.
충남도 관계자는 “탄소중립을 위한 산업구조 전환, 석탄산업 종사자에 대한 고용 지원 등 문제는 매우 복잡해 지자체 노력만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다”며 “일관성 있는 지원 등 종합대책이 수립될 수 있도록 각 시·도가 힘을 모아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흠 충남도지사
“지역경제 침체 대비 신산업 육성… 국가 지원 필수”
“지역경제 침체 대비 신산업 육성… 국가 지원 필수”
“발전소 폐지에 따른 지역경제 침체에 대비해 일자리 마련, 신산업 발굴을 중심으로 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김태흠(사진) 충남도지사는 7일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도내 석탄화력발전소 폐지에 따른 대비책을 선제적으로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단순히 발전소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특성에 맞는 신산업을 육성해 새로운 충남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김 지사는 “발전소 폐쇄로 27조원의 경제적 피해가 발생하고 8000여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보령·서산·태안은 국제해양레저관광벨트를 만들고 서천엔 생태복원사업을 추진하는 등 지역의 특장에 맞는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LNG냉매물류단지 조성 등 신산업 육성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각 사업을 보다 속도감 있게 추진하려면 국가 차원의 지원은 필수다. 지자체 노력만으론 석탄발전 폐지로 발생하는 피해를 감당하는데 한계가 있어서다. 때문에 김 지사는 석탄발전 폐지지역 지원특별법이 조속히 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독일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특별법을 제정, 수조원 규모의 기금을 만들어 석탄발전 폐지지역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겠다”며 “특별법의 조속한 제정을 위해 대통령과 직접 만나 이 내용을 건의했다. 향후 국회와 산업통상자원부를 찾아 강력히 건의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김 지사는 석탄화력발전소가 폐지되는 만큼 추가로 발전시설을 지을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지역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LNG 발전소 같은 친환경 발전소를 유치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지역의 미래 먹거리가 될 수소에너지 분야에 집중하겠다는 구상도 내비쳤다.
그는 “폐지된 석탄화력발전소 만큼 우리 지역에 또 다시 발전시설을 지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하지만 LNG와 같은 추가적인 친환경 발전소 유치 노력은 필요하다. 이와 함께 지역 대체산업이자 미래먹거리가 될 수소에너지 분야의 융복합산업벨트 조성, 청정수소 시험평가 및 실증화 지원기반 구축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성=전희진 기자 heej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