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강을 기억하는 것

입력 2023-03-08 04:06 수정 2023-03-08 04:06

대부분 네모난 집에 산다. 집은 네모난 건물 속에 있고 건물은 네모난 블록 속에 있다. 길은 이 네모난 필지와 블록을 직각으로 가로지른다. 그래서 도시에선 직각으로 걷는 것에 익숙하다. 서울 양천구도 그러한데 목동 아파트 단지나 1960년대 이후 주거환경 정비사업으로 형성된 지역이 대표적이다. 간혹 부정형의 길도 있다. 주로 언덕배기 지형을 따라 오래전부터 형성된 동네다. 구불구불 좁은 길은 주행과 주차는 힘겹지만 구석구석 걷다 보면 생생한 역사를 마주한다. 가끔 평탄한 지역에서 완만하게 휘어지는 너른 길을 만나는데 이건 필경 강줄기가 있는 곳이다.

허리가다천. 서울답사가 김시덕 박사가 찾아낸, 양천구를 한때 주름잡던 강 이름이다. 독특한 이름의 이 강은 양천구 신월5동 수명산에서 발원해 신월1동을 가로질러 옛 경인고속도로를 건너고 신월4동을 지나 동쪽으로 물길을 꺾어 장수공원 지하로 파고들며 작은 언덕을 넘는다. 신정네거리역과 제일시장을 휘돌고 목동 10, 11단지를 가로질러 신정차량기지와 갈산공원 사이를 S자로 틀면서 대망의 안양천에 안긴다. 양천구의 서북쪽 끝에서 동남쪽 끝까지 이어지는 주름진 물줄기는 전 구간이 도로로 덮인 복개천(覆蓋川)이라 상상 속에서만 탐사 가능하다.

양천구는 이름 자체로 볕 양(陽), 내 천(川)이니 양지바른 수변도시다. 서고동저 지형이라 물은 동으로 흘러 안양천과 만나고 북으로 흘러 한강에 이르는데, 옛 지도엔 허리가다천을 비롯한 수많은 내와 수로가 그물망처럼 새겨 있다. 20년 전 청계천 복개도로를 걷어내 녹지와 물길을 복원하니 기온이 낮아지고 산책을 하는 지역으로 바뀌었다. 이후 한강르네상스를 지나 최근 서울시가 절찬 추진 중인 ‘수변감성도시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물길을 복원하고 친수공간을 확대함으로써 도시가 공존하게, 또 지속 가능하게 만든다. 강을 기억하는 것 그리고 콘크리트에 덮인 강줄기를 여는 노력이 결국 도시를 살릴 것이다.

온수진 양천구 공원녹지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