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
1993년 1월 네덜란드 헤이그의 왕립음악원 기숙사에서 생활할 때였다. 하루는 한국 유학생이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다. 그는 자신의 여동생이 왕립음악원으로 바이올린을 배우러 유학 오고 싶어 하는데 도와줄 수 있느냐고 청했다. 그렇다고 하자 자신이 오는 길에 강도를 만나 가진 것을 모두 빼앗겨 며칠을 굶었다고 했다. 나는 측은지심을 느껴 도시락을 가져다주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다음 날 도시락을 돌려준다며 기숙사에 찾아왔다. 감사 인사차 들렀다고 하길래 따듯한 차라도 대접하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강도로 돌변했다. 마티네 졸업 예비 공연을 위해 학교에 가야 했는데 큰 낭패를 만나게 된 것이다. 알고 보니 그는 독일에서 추방당했는데 그때 이미 악기를 훔쳤고 암스테르담에서 팔아치운 뒤 파친코에서 돈을 전부 탕진한 상태였다.
나는 울면서 “하나님, 나 여기서 죽고 싶지 않아요” 하고 간절히 기도했다. 나는 그에게 “당신의 여동생도 바이올린을 이곳에서 배운다고 하지 않았냐”고 묻자, 그는 흉기를 들이대고 위협하면서 내 손을 뒤로 하라고 하면서 준비해온 끈으로 묶으려 했다.
그리고 카드만 준다면 그냥 나가겠다고 말하는 순간, 태권도로 단련된 나는 순발력을 발휘했다. 손을 빼 그가 잠시 흉기를 소파 위에 놓은 것을 잡아 던지려 하니 두 동강이 났다. 이내 육탄전을 벌였다. 그는 내게 항복하듯 “죄송해요. 사모님, 기도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내가 나가서 돈을 주겠다고 하고 둘 다 미친 듯 기숙사 밖으로 나왔다. 포스트뱅크로 가는 길목에 나는 제발 경찰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기적처럼 코너를 돌자마자 경찰이 나타나 강도는 붙잡혔고 그는 구속됐다.
나는 흉기가 부러지면서 다친 왼손을 병원에서 치료했다. 5월에 졸업해야 하는데 낭패였다. 하지만 어머니의 기도와 믿음으로 심신을 다스렸고 감사하게도 수석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교정사역을 하는 조이스 매튜라는 지인을 통해 그 강도가 통화 요청을 해왔다. 그는 “사모님, 저를 용서해 주세요” 하고 울면서 용서를 빌었다. 헤이그에서 3년, 한국에 가서도 죗값을 치른다고 했다.
나는 이렇게 유학 시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사건을 극복했다. 지난해 12월엔 홍난파 가곡제 예술총감독을 맡아 공연을 진행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약력> △성악가(소프라노) △단국대 대학원 뮤지컬 석사 △K클래식 가곡 세계화 문화대사 △백석대 문화예술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