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6일 입법예고한 근로시간 개편안은 ‘일할 때 바짝 일하고 쉴 때 푹 쉰다’는 말로 요약된다. 업무가 바쁠 때 ‘주 최대 69시간’ 혹은 ‘11시간 휴식 없이 주 최대 64시간’ 근무하고, 연장근로에 대한 보상을 시간으로 적립해 장기 휴식을 누릴 수 있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노동 현장에서는 “있는 휴가도 다 쓰지 못한다”는 현실적 불만이 나오는 데다, 개편안 내용 대부분이 법 개정 사항이라 야당이 다수를 차지하는 국회 벽을 넘기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11시간 연속휴식이라는 현재의 건강권 보호 장치가 사실상 허물어지면서 ‘주64시간 상한제’가 굳어질 수 있다는 노동계 비판도 거세다.
개편안에 따라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가 ‘월’ 단위 이상으로 확대되면 산술적으로 주 최대 근로시간은 69시간까지 늘어난다. 그러나 특정 기간에 연장근로시간을 많이 쓰면 다른 기간에 그만큼 줄여야 하기 때문에 근로시간의 ‘총량’은 변함이 없다. 월 단위 연장근로 제도하에서 첫째 주에 69시간(법정 40시간+연장 29시간) 일하고 둘째 주에 63시간(연장 23시간) 일하면 한 달 치 연장근로시간인 52시간을 모두 쓰게 된다. 이에 따라 남은 주에는 1주일에 40시간만 일해야 한다. 특히 ‘분기’ 단위 이상일 경우엔 연장근로시간 총량을 10∼30% 줄이도록 해 오히려 실근로시간이 줄어든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노동자가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하는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 기간도 모든 업종에서 3개월로 늘린다. 연구·개발 업무의 경우 6개월까지 정산 기간을 확대한다. 정부는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활용해 ‘주4일제’나 ‘주4.5일제’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하루 10시간씩 1주일에 4일 일하면 1주 40시간이라는 법정 근로시간을 지키면서 평일에 하루 쉴 수 있기 때문에 주4일제 도입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휴가 활성화 방안으로는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내세웠다. 연장·야간·휴일근로의 전부 또는 일부를 휴가로 적립해 ‘저축 휴가’라는 개념을 새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근로조건을 변경하려면 사업주와 근로자 대표 사이에 서면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 정부는 근로자 대표제를 제도화해 대표성을 강화하기로 했다. 과반수 노조, 노사협의회의 근로자 위원 순으로 근로자 대표를 맡도록 하고 이마저도 없으면 투표를 통해 대표를 선출하도록 했다.
노동계는 정부 개편안이 노동자 건강에 대한 고려가 전무하다며 강력 반발했다. 한국노총은 “연장근로를 연 단위로 관리하면 4개월 연속 1주 64시간을 시키는 것도 가능해진다”며 “노동자들은 기계가 아니다. 특정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일하고 그 후 휴식과 안정을 취한다고 해서 절대 건강을 유지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근로시간저축계좌제는 생활과 생존이 어려워 실질적인 강제노동에 내몰리는 노동자들에게 수당을 포기하고 휴식을 하라는 것인데 이는 작은 사업장, 저임금 노동자에겐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라고 날을 세웠다.
정부는 ‘눈치 보지 않고 휴가 쓰기’를 위해 대국민 캠페인을 추진한다는 계획이지만 벌써 회의적 반응이 나온다. 2021년 근로자 휴가조사에서 5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의 연차 소진율은 76.1%였고, 같은 해 연차 휴가를 모두 소진하는 기업은 40.9%에 불과했다.
세종=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