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결단에 日 화답… 관계정상화 급물살

입력 2023-03-07 04:07
박진 외교부 장관이 6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관련 정부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왼쪽 사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참의원 예산위원회 출석 중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한국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에 대해 “한·일 관계를 건전한 방향으로 되돌리는 것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권현구 기자, AP연합뉴스

정부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판결금을 일본 피고 기업 대신 국내 재단에서 지급하는 방안을 공식화했다. 재단이 판결금을 마련하는 데 있어서도 일본 기업의 참여가 담보되지 않아 사실상 국내 기업이 국내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6일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관련 정부 입장 발표’ 회견에서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2018년 대법원의 3건의 확정판결 원고분들께 판결금 및 지연이자를 지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에 계류돼 확정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다른 강제징용 소송 9건에 대해서도 원고가 승소할 경우 판결금과 지연이자가 재단을 통해 지급된다. 재단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따라 자금 수혜를 입은 국내 기업으로부터 자발적 기금을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박 장관은 “한·일 양국이 1998년 10월 발표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발전적으로 계승해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선린우호협력에 입각한 미래 지향적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 엄중한 한반도 및 국제 정세 속에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가장 가까운 이웃인 일본과 함께 양국의 공동 이익과 세계의 평화 번영을 위해 노력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날 발표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미래 지향적 한·일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결단”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발표를 계기로 그간 꽉 막혔던 한·일 관계 정상화의 물꼬를 트게 됐다. 한·미·일 3국 공조를 강조해온 미국은 즉각 환영 입장을 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오늘 발표는 미국과 가장 가까운 동맹국 간 협력과 파트너십의 획기적인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도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한·일 관계에 관해 “역사 인식은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피고 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의 배상 참여가 없고, 피해자들이 마지노선으로 제시한 일본의 직접적인 사과도 없어서 ‘반쪽 해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피해자 측은 거세게 반발했다. 피해 당사자인 양금덕 할머니는 광주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잘못하고 사죄할 사람이 따로 있는데 (정부 해법으로) 해결해선 안 된다”며 “반드시 (일본이) 사죄를 먼저 한 다음에 다른 모든 일을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해자 소송 대리인단은 정부 해법에 동의하지 않는 피해자들의 배상 채권 청구를 계속해 나갈 방침이다. 대리인단 임재성 변호사는 “정부 안에 찬성한다고 확인한 피해자는 원고 기준 15명 중 4명뿐”이라며 “정부가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는 방법을 밀어붙이는 건 대법원 판결을 부인하는 위헌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김영선 송태화 김지애 김용현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