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로봇이 철학하는 세상

입력 2023-03-07 04:02

1932년 올더스 헉슬리가 내놓은 ‘멋진 신세계’는 600년 후의 미래를 상상한 소설이다. 기계문명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아이들은 공장에서 부모가 누군지도 모른 채 인공수정으로 태어나고 인큐베이터 같은 유리병 속에서 보육된다. 지능의 우열로 지위가 결정되며 할당된 역할을 수행하도록 프로그램된다.

갈등은 문명세계에서 잉태된 ‘존’이 사고로 인디언 보호지역에서 태어나면서 시작된다. 존은 기계문명이 지배하는 신세계와 달리 육체적 고통과 인간적 감정을 느끼며 인디언 보호지역에서 성장한다. 다시 문명세계로 돌아간 존은 적응하지 못하고 진정 가치 있는 인간의 삶이 무엇인지를 질문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멋진 신세계가 출간된 당시 독자들 중 소설 속 세계를 두려워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가능하지 않은 일, 가능하더라도 아주 머나먼 미래의 일이었으니까.

김영하가 지난해 내놓은 ‘작별인사’의 배경은 몇십 년 혹은 몇 년 후가 될 수도 있는 가까운 미래다. 인공지능과 유전공학이 발달해 인간과 로봇이 쉽게 구별되지 않는 세상이다. 많은 부분을 로봇에 의존하는 인간은 스스로를 ‘사이보그’라 냉소하듯 칭하고, 휴머노이드는 인간과 철학적 논쟁을 벌인다. 인간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 로봇이 불멸을 추구하지만 필멸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이 스토리의 큰 축이지만 이질적이진 않다. 새로운 경험과 지식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묻기보다는 인공지능에 묻는 게 익숙하고, 낯선 이와의 대면보다는 키오스크와의 의사소통을 훨씬 편하게 느끼는 세상이 이미 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김영하가 묘사한 가까운 미래에 대해 컴퓨터과학자이자 음악가인 레이 커즈와일은 조만간 달성될 현실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그는 인쇄된 문자를 읽는 장치를 발명해 시각장애인을 위한 판독기로 발전시켰고, 진짜 악기와 똑같은 소리를 내는 신시사이저를 개발하면서 이름을 날렸다. 구글과 인공지능에 대해 함께 연구하는 그는 뇌에 기술을 접목시켜 인간의 불멸성을 실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커즈와일은 기술이 기하급수적으로 발달해 2045년에는 인공지능이 모든 영역에서 인간을 능가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인간이 자신의 인격을 뇌에서 다운로드해 백업해둘 수 있게 되고 백업된 인격이 인공지능과 융합해 디지털로 계속 살아가는, 불멸의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의 예측대로라면 작별인사에서 휴머노이드 ‘철이’가 고민했던 상황은 20여년 후 우리가 맞닥뜨릴 현실이 된다.

지난 주말 미국 보건당국이 일론 머스크가 추진해오던 ‘뇌 임플란트’ 인체 실험을 불허했다는 사실이 외신을 통해 전해졌다. 머스크의 구상은 뇌의 전기신호를 읽어낼 칩을 머릿속에 부착해 인간의 생각을 파악하겠다는 것이다. 인간과 비슷한, 인간보다 더 뛰어난 무언가를 만들기 위한 시도다. 앞으로도 이 실험이 허가를 받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험 대상자의 안전을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험이 허가된다 해도 칩이 인간의 신경세포와 호응하려면 뇌의 정보 입력 및 실행 방식을 알아야 하는데 현재 기술 수준은 이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과학자들은 뇌 속 신경세포의 활성을 측정해 컴퓨터에 전달하는 것을 아직 요원한 일로 여긴다. 신경세포 활성도 데이터를 확보한 후 이를 분석해 인간의 생각을 알아내는 건 훨씬 더 어려운 과제다. 그러나 언젠가 이 일이 가능해진다면? 인공지능과 연결된 칩이 뇌에서 뉴런과 상호작용을 통해 생각을 읽고 그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면 이건 인간의 행동일까 아닐까. 그렇게 불쑥 신세계가 다가온다면 우리는 그 세상을 유토피아라 여기게 될까.

정승훈 디지털뉴스센터장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