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연령대 술에 노출될 경우
성인 된 뒤 의존 가능성 더 높아
청소년 주류 접근성 더 쉬워져
전체 음주율 낮아지는 것과 달리
청소년 위험 음주율은 되레 상승
성인 된 뒤 의존 가능성 더 높아
청소년 주류 접근성 더 쉬워져
전체 음주율 낮아지는 것과 달리
청소년 위험 음주율은 되레 상승
25세 남성 A씨는 최근 수도권의 한 알코올전문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다. 젊은 나이에 흔히 ‘알코올 중독’으로 불리는 ‘의존증’ 단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2 때 시작한 술은 삶의 우선순위가 됐고 술을 끊으면 금단 증상이 나타나 다시 입에 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몸과 마음은 급속히 피폐해졌다.
A씨 같은 알코올 중독 환자의 상당수는 청소년 시기에 음주를 시작한다. 실제 보건복지부 지정 알코올질환 전문기관인 다사랑중앙병원이 최근 20~80세 알코올 의존증 입원 환자 200명(남성 140명, 여성 60명)을 조사한 결과 첫 음주 시기가 10대라고 답한 비율이 남성 39.3%(55명) 여성 26.7%(16명)로 나타났다.
알코올 중독 상당수, 10대 때 술 시작
술로 빚어진 정신의학적 문제를 지칭하는 ‘알코올 사용·행동장애’는 기분 전환을 위해 술을 적극 사용하고 그로 인한 기억 끊김과 후회·죄책감을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습관성 음주’→술 조절 능력 상실 및 고통 경험(불안 우울 분노 저항감), 생활전반 왜곡, 가정불화, 대인관계 고립 등 위기 상황이 초래되는 ‘남용’→만성적 금단과 내성 증상(술을 끊기 힘듦), 뇌와 성격 변화가 동반되는 ‘의존증(중독)’ 단계를 포괄한다.
세 단계는 서로 연결돼 있다. 습관성 음주에 남용이 더해지고 그 과정이 오래 지속되면 뇌가 술에 익숙해져 알코올 의존증으로 진행될 확률이 높아진다. 이런 과정은 대개 10~20년 걸린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정재훈 아주편한병원장은 6일 “청소년이 알코올 중독이 될 가능성은 낮다. 다만 이는 현재 그렇다는 것이지 세월이 더해지면 이른 나이에 술에 노출되므로 향후 성인이 돼 의존 가능성은 더 높아지고 진행 시기도 빨라진다”고 설명했다. 국내 청소년의 첫 음주 연령은 13.2세다. 청소년은 성인에 비해 절제력이 약하기 때문에 알코올 조절에 더 취약할 수 있다. 또 감성적 성향이 강해 만취 시 문제 행동을 보일 가능성도 크다.
복지부의 정신질환실태조사(2016년)에 따르면 알코올 남용 발병 연령은 절반 가까운 47.9%가 20대였고 이어 10대(16.3%) 30대(16.1%) 40대(12.4%) 순이었다. 알코올 의존증 발병도 43.3%가 역시 20대였고 30대(21.4%) 10대(16.4%) 40대(11.5%) 순이었다. 10대를 포함한 술 소비가 많은 20·30대에서 알코올로 인한 정신건강 문제를 많이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코로나 기간 술 구매 더 쉬워져
청소년의 주류 접근성은 여전히 쉬운 편이다. 2021년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 의하면 술 구매 용이성은 2020년 63.5%에서 2021년 71.3%로 코로나19 유행 기간 오히려 상승했다. 음주 경로는 집이나 친구 집에 있는 술(60%), 편의점·마트·슈퍼서 구입(43.6%), 배달음식과 함께 주문(18.9%), 술집서 마심(10.5%), 성인에게 얻어 마심(10.5%) 등 순이었다. 2021년 기준 중·고교생의 현재 음주율(최근 30일간 1잔 이상 술을 마신 적 있음)은 남학생 12.4%, 여학생 8.9%였고 위험 음주율(현재 음주자 중 최근 30일간 1회 음주량 남자 소주 5잔, 여자 소주 3잔 이상)은 남학생 5.3%, 여학생 4.4%로 전년과 비슷했다. 또 현재 음주자 중 최근 30일간 하루 이상 정신을 잃거나 기억을 못 할 정도로 술을 마셨던 만취 경험률도 남학생 10.1% 여학생 10.7%에 달했다.
청소년 알코올 문제 전문가인 백형태 메티스신경정신과의원 원장은 “사회 전반적으로 음주율과 위험 음주율이 줄어드는 추세지만 청소년의 위험 음주율, 특히 여자 청소년은 성인에 비해 높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청소년의 몸과 뇌는 계속 발달하고 있어 성인과는 다른 방식으로 알코올의 영향을 받는다. 이른 나이에 과도한 음주를 하는 것은 뇌에 회복할 수 없는 영향을 끼치고 영구적인 상태 변화와 손상을 초래한다”고 부연했다.
다만 알코올 사용·행동장애로 병원 진료를 받은 10대는 2017년 2001명→2019년 2235명→2020년 1359명→2021년 857명으로 감소 추세를 보였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 코로나 유행으로 병원을 포함한 보건의료시설 이용이 감소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백 원장은 “특히 청소년들은 성인 입원시설 위주인 알코올전문병원 보다는 외래 기반의 일반의원(소아청소년과 등)을 이용하는데, 자신의 알코올 문제를 적극 얘기하지 않고 불안 질환이나 우울증, 기타 다른 정신질환으로 찾는 경우가 상당수일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알코올 문제를 겪는 청소년은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했다.
‘공존 질환’ 함께 치료해야
청소년 음주 문제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나 우울증·불안장애, 품행장애(가출 등 비행) 등 ‘공존 질환’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ADHD가 있는 청소년은 일반 청소년에 비해 뇌 전전두엽 기능이 떨어져 하고 싶은 욕구나 충동이 생기면 억제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우울증이 있는 경우에도 기분이 좋아지는데 도움되기 때문에 술을 마신다.
올해 고3인 B양은 중학생 때부터 시작된 지각·무단결석, 가출, 성적(性的)이탈 등으로 진료가 의뢰됐고 ADHD와 ‘가면 우울증(우울감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음)’ 진단을 받았다. 심층상담 결과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언니들과 어울리며 입에 댄 술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백 원장은 “청소년은 단순한 술 문제보다 친구 관계나 가족 불화가 얽혀 있거나 신경 발달·심리적 문제, 학교·사회 환경의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결부돼 있다”며 “이런 특성을 잘 이해하는 소아청소년 정신건강 전문의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청소년이 술을 마시는 이유 중 하나는 기분 전환이다. 그런데 이들이 불안·우울해하는 신호를 보내면 대부분의 어른들은 “쟤는 왜 저리 유난을 떠는데?” “별일 아니겠지” 등으로 넘어가기 쉽다. 따라서 아이들이 보내는 ‘위기 시그널’을 빠르게 알아차리고 그에 맞는 도움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청소년 음주는 흡연과 함께 본드나 마약 등 다른 약물을 사용하는 관문이 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알코올 문제가 발생할 위험도 높은 청소년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적 개입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울러 현재의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전국 58곳)를 더 늘리고 청소년 특화 프로그램의 개발·보급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동기획 : 한국건강증진개발원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