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회복력이 강한 사회를 위해

입력 2023-03-07 04:02

코로나19 위기의 끝이 보인다. 코로나 감염병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방역정책이 우리 경제를 더 이상 가로막지는 않을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 위기 등 여러 차례 경제 위기를 겪어 왔다. 사드 사태, 일본 수출규제, 미국과 중국 간 무역 분쟁 등 굵직한 충격도 많았다. 최근엔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고 현상과 함께 경기가 둔화하면서 어려운 시기를 지내고 있다. 크고 작은 충격이 빈번히 발생하는 시대를 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우선 이런 충격을 완전히 방지할 수는 없다는 데서 시작하자. 수출 의존성이 높은 한국 경제는 우리가 제어할 수 없는 대외 여건에 쉽사리 흔들린다. 높아지는 국제유가에 영향을 미칠 수 없으며, 그렇다고 원유를 수입하지 않고 지낼 수도 없다. 바깥세상이 위험하다고 집안에서만 생활할 수도 없다. 따라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건 충격을 이겨내는 회복력이다.

마커스 브루너마이어는 ‘회복탄력 사회’에서 회복력이 강한 사회를 떡갈나무와 갈대 동화의 갈대에 비유했다. 떡갈나무는 바람에 잘 버텨내지만 일단 부러지고 나면 회복할 수 없다. 반면 갈대는 바람이 불면 휘어지지만 바람이 잦아들면 다시 일어선다. 저자는 회복력이 약한 사회는 위험을 극도로 회피함에 따라 경제 성장도 낮아진다고 말한다. 한국은 과거에는 선진국을 모방하고 추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이제는 새로운 기술을 개척해 나가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도전적 과제에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하려면 실패하더라도 다시 쉽게 회복할 수 있다는 기대가 뒷받침돼야 한다. 반대로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실패 가능성이 낮은 과제에만 도전한다. 한국의 연구·개발(R&D) 사업은 성공률이 매우 높다. R&D 사업 참여자의 역량과 노력이 충분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주로 실패하지 않을 정도로 낮은 목표를 세우기 때문이라는 비평도 설득력이 있다.

회복력이 강한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회복력이 강한 개인의 주요 특성으로 현실성, 유연성, 낙천성이 꼽힌다. 현실을 냉정하고 명확하게 인식해 상황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며, 이에 기반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 것이다. 개인뿐 아니라 사회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이 중 유연성은 사회제도 및 정책과 관련이 깊다.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안정된 삶을 사는 것은 많은 이들의 희망이다. 그러나 모든 직장이 지나치게 안정돼 있는, 경직된 노동시장에서는 일단 직장에서 이탈하면 우수한 역량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재취업하기 어렵다. 그래서 자영업자가 된다. 인력을 유연하게 조정하지 못하는 회사는 채용에 신중을 기하며 직원을 충분히 고용하지 못한다. 사업이 쇠퇴하더라도 인력을 유지할 수밖에 없으며, 유망한 회사는 인력을 구하기 어려워진다. 한 사회의 인력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지 못한다. 사회에서 필요한 인적 역량에 대한 수요는 바뀌는데도 대학 학과 정원은 유연하게 조정되지 못한다.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머지않아 연금이 고갈되는 현재의 연금제도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연금제도가 유연하게 조정되지 못하면서 미래가 불확실해지고 세대 간 갈등이 생겨난다. 현재의 노동·교육·연금제도는 충분히 유연하지 못하다.

코로나 이후 경제·사회 환경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디지털화가 가속화되면서 로봇과 인공지능(AI)이 이제 실생활에 도입되고 있고, 더 늦기 전에 기후위기에도 대응해야 한다.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유연성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다양한 충격과 경제사회 구조 변화로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유연성을 강화하면서 다시 쉽게 일어서는 사회를 만들어가자.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 경제전망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