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교회라 하면 으레 상가나 가정집에 예배 처소를 마련한 소형교회를 떠올린다. 보증금과 월세 부담으로 넉넉한 공간을 구해 교회를 개척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성도도 목회자 부부와 가족, 친지로 단출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개척교회 목회자 부부 가운데는 주중엔 일하고 주말엔 사역자로 변신하는 ‘투잡러’도 꽤 된다.
장로회신학대 신학대학원 동기인 김강희(34) 목사와 김건우(35) 전도사는 일종의 공식으로 통하는 이 ‘개척교회 노선’에 의구심을 품었다. ‘사람과 자금, 공간 없이 복음 담은 콘텐츠만으로 교회 개척이 가능할까.’ 이 고민의 결과가 지난 1월 두 사람이 공동 개척한 ‘처치 제로원’이다. 예배와 설교, 묵상을 전부 온라인에서 진행하는, 그야말로 ‘온라인 온리’(온라인 전용) 교회다.
성도와의 교제나 신앙 훈련은 도심 속 산과 공원에서 플로깅(산책하며 쓰레기 줍기)을 하거나 사진전, 미술관을 함께 관람하고 감상을 나누는 식으로 진행한다. 예배당이 아닌 일상 공간에서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방법을 안내하기 위함이다. 지난달 24일 서울 광진구 아차산으로 플로깅을 나선 이들과 동행해 온라인 공간에 교회를 개척한 이유를 들었다.
관심이 쌓여 신앙이 된다
“준비물은 마실 물 담긴 텀블러와 산을 즐기는 마음입니다.”
플로깅 하루 전 문자 연락을 받고 준비물을 챙겨 이튿날 오전 장로회신학대 북문에서 김 목사와 김 전도사를 만났다. 두 사람의 손엔 집게와 생분해성 봉투, 카메라 장비가 들려있었다. 두 사람이 미리 준비한 목장갑을 착용하고 집게와 봉투를 양손에 각각 쥔 채 플로깅에 나섰다.
환경교육사 자격 취득 후 환경 비영리법인에서 4개월 정도 일한 김 전도사가 앞장섰다. 해발 295.7m인 아차산 정상으로 향하는 탐방로에는 휴지와 담배, 온갖 주전부리 포장지와 사용한 마스크가 군데군데 버려져 있었다. 산행객이 모이는 벤치 근처엔 쓰레기가 특히 많았다. 정상을 앞둔 벤치 앞 비탈길엔 컵라면 용기와 생수병, 젓가락과 맥주캔 등이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비탈길로 내려가 쓰레기를 모두 주운 김 목사는 “이렇게 양지바른 곳에 있는 벤치에 쓰레기가 많은 편”이라며 “잘못하면 새가 주워 먹을 수 있으니 바로 줍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은 번갈아 가며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하며 쓰레기를 주웠다. 촬영된 영상은 처치 제로원의 플로깅 활동을 소개하는 데 쓰인다. 눈에 잘 안 띄는 곳에도 매의 눈으로 담배꽁초를 찾아내 줍는 김 전도사를 보며 몇몇 산행객이 덕담을 건넸다. 4시간 가까이 걸린 이날 플로깅으로 10ℓ 용량 쓰레기봉투가 가득 찼다.
온라인, 가상공간 아닌 물리적 실상
플로깅은 기독교 신앙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김 전도사는 이 질문에 학부 졸업 후 다녀온 브라질 아마존 선교 경험담을 꺼냈다.
“선교 가기 전엔 환경에 관심이 없었는데요. 아마존을 보며 ‘창조세계가 인간에게 주는 감동이 이런 거구나’란 걸 느꼈습니다. 동시에 아마존이 파괴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도 느꼈죠. ‘지구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란 고민을 그때 했습니다. 저처럼 관심이 쌓이고 보이는 게 많아져야 그 과정에서 신앙적 측면도 찾을 수 있어요. 플로깅은 그 과정인 겁니다. ‘교회가 이런 일도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요.”
대학 졸업 후 음악 쪽 진로를 고민했던 그는 아마존 선교 후 장신대 신대원에 진학했다. 신대원 기숙사에서 만난 김 목사와 의기투합해 ‘처치 제로원’을 개척한 그는 현재 예배 찬양과 플로깅 등 사역 기획을 담당한다.
처치 제로원의 설교와 영상 기획·편집은 5년 차 유튜버인 김 목사가 맡았다. 구독자 500여명을 보유한 개인 채널에서 IT 유튜버로 활동한 그는 대학원 진학 후 선교신학회 한국얌스팰로우십의 영상 담당자로 지내며 꾸준히 영상 편집 실력을 쌓았다. 코로나19 시국에 부교역자로 섬기던 교회 예배 영상도 제작했는데 그는 이 과정에서 온라인 교회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흔히 온라인을 가상공간이라고 하는데, 저는 이 말이 온라인에 대한 몰이해에서 온다고 봅니다. 온라인은 ‘물리적 실상’이예요. 국민 대다수가 쓰는 모바일 메신저가 마비됐을 때 우리의 일상도 마비되지 않았습니까. 온라인이 가상공간에 그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연결된 현시대에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 답을 찾은 게 온라인 교회입니다.”
처치 제로원의 또 다른 특징은 성도의 ‘자발적 신앙생활’을 권한다는 것이다. 김 목사는 “MZ세대를 억지로 교회에 앉힌다고 믿음이 생기는 게 아니란 걸 부교역자 시절 느꼈다”며 “우리는 복음의 매력을 영상 콘텐츠로 극대화하고, 성도에겐 자발적인 신앙을 권하려고 한다”고 했다.
이런 방식으로 과연 복음 전달이 가능할까. 김 목사는 “저희는 그저 최선을 다해 삶 속의 복음, 신앙의 실천을 보여주려 한다”며 “복음을 받아들이고 사람이 변화되는 건 하나님 손길에 맡길 것”이라고 말했다.
개척교회 새 모델 되길
이들의 실험적 목회를 격려하기 위해 지난 20일엔 경기도 남양주의 박보경 장신대 교수 자택에서 ‘처치 제로원 론칭 축하 모임’이 열렸다. 박 교수는 제자들을 축복하며 이렇게 기도했다. “아무도 안 나서는 일에 두 사람이 나섰습니다. 실패해도 좋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성공하게 하소서. 당신의 사랑을 보이는 이 사역에 이들이 온전히 헌신하게 하소서.”
김 목사와 김 전도사의 소망은 처치 제로원이 ‘개척교회의 새 모델’이 되는 것이다.
“한국교회에서 ‘교회 개척’이란 말이 지닌 고정관념을 깨고 싶습니다. 21세기에 걸맞은 온라인을 활용한 개척교회 모델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저희처럼 부족한 목회자도 ‘해보니 된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남양주=글·사진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