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이 없어요, 죄송”… 유치원 줄폐원, 학부모들 ‘털썩’

입력 2023-03-06 00:02 수정 2023-03-06 00:02
국민일보DB

7세 딸을 둔 김모씨는 지난달 23일 유치원 원장으로부터 휴원 소식을 들었다. 개학을 불과 1주일 남겨둔 상황이었다. 이미 다른 유치원들은 원아 모집이 끝나 있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김씨는 수소문 끝에 빈자리가 있는 다른 곳을 찾았지만, 그의 딸은 현재 새 유치원에서 2년 전 겪었던 적응기를 다시 거치는 중이다.

김씨 자녀가 다니던 경북 포항의 한 사립유치원은 설립 33년 된 나름의 역사가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문을 닫는 데에는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이 유치원 원장은 알림장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휴원을 통보했다. 김씨 딸을 포함해 58명의 원아가 지내던 곳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김씨는 5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그렇게 유치원이 갑자기 사라질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아이가 왜 다른 곳에 가야 하냐고 묻는데 ‘유치원이 아파서 문을 닫게 됐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며 “흩어진 아이 중 한 명은 다니던 유치원에 가고 싶다며 갑자기 울기도 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저출산 여파로 최근 갑작스럽게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문을 닫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2개월 전 통보를 해야 하는 폐업 대신 쉽게 문 닫을 수 있는 휴업을 택하는 곳도 많다. 유치원 원장들은 운영을 계속하기 어려워 어쩔 수 없이 결정했다고 말하지만, 폐원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과 부모에게 전가되고 있다.

21개월 딸을 둔 또 다른 김모씨도 4개월간 다니던 가정 어린이집으로부터 갑작스러운 폐원 결정 통보를 받았다. 당장 새 학기가 시작되다 보니 정원이 남은 곳을 겨우 찾아 등록했다. 그는 “딸아이가 옛어린이집 친구들과 인사도 하지 못하고 떠나게 됐다”며 “다른 어린이집을 제대로 알아볼 기회도 없었다.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인지 알아볼 겨를도 없이 빈 자리가 있는 곳에 아이를 맡기게 됐다”고 토로했다.


어린이집·유치원 폐원 가속화는 갈수록 가팔라지는 추세다. 보건복지부와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 어린이집 수는 2018년 3만9171개에서 지난해 3만923개로, 유치원 수는 같은 기간 9021개에서 8562개로 급감했다. 상황이 개선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는 앞으로 5년 내에 1만개의 어린이집이 폐원할 것으로 전망했다. 도미향 남서울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저출산으로 어린이집이 서서히 줄어들다가 최근 급격하게 감소 티가 나기 시작했다. 100명씩 되던 국공립 어린이집 대기자도 사라졌다”고 말했다.

기록에 잡히지 않는 휴업 상태의 어린이집·유치원도 늘어나는 모습이다. 어린이집이 폐원하기 위해선 혼란 방지를 위해 2개월 전에 학부모와 교사들에게 알리고 지방자치단체에 보육 영유아 전원 계획서 등을 제출해야 한다. 임의로 폐원하거나 운영을 중단하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사립유치원도 교육청의 허가를 받기 전엔 폐원할 수 없다. 학부모 3분의 2 이상이 폐원에 동의했다는 증명서와 폐쇄 사유서, 전원 조치 계획 등을 제출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준이 까다로운 폐업 대신 휴업을 택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이다. 정부의 관리 감독 지원 등이 가능한 폐업과 달리 휴원은 관리 사각지대다. 교육부 관계자는 “휴원의 경우에 현재로서는 조치할 근거가 없다. 현장에서는 (폐업보다) 휴원이 차라리 낫다는 의견이 있어 대책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신영 기자 spiri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