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대상 영어학원(영어유치원)에 자녀를 보내고 있는 학부모 200명 중 77명은 사무·기술직이었다. 전업주부(30명), 과학 등 기타 전문직(18명), 의료인·공무원 및 기업 고위직·교육직(각각 12명)이 뒤를 이었다. 조사 대상 100명에게 본인과 배우자의 직업을 응답하도록 한 결과다. 전문직은 설문 응답률이 낮은 경향이 있어 표준화에 한계가 있지만, 이러한 구성은 영어유치원이 극소수 부유층의 고액 사교육처럼 인식되던 과거의 경향과는 다르다.
조사 대상 학부모들이 응답한 월평균 가구소득을 응답 구간의 중간값으로 거칠게 표준화하면 약 801만원이다. 올해 4인 가족의 중위소득(약 540만원)을 상회하는 수치지만 이 역시 유별난 부유층으로만 치부하긴 어렵다. 결국 영어유치원을 사회경제적 지위가 특출난 이들의 전유물로 볼 시기는 지났다. 변수용 미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육학·인구학·아시아학 교수는 “영어유치원이 엘리트 코스의 시발점이라는 생각은 사회계층을 재생산하는 입장에서 해석될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회계층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입장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교육비가 여타의 사교육보다 고액이라는 점, 이르게는 만 3세부터 ‘사전 사교육’이 시작됐다는 점 등은 영어유치원을 둘러싼 씁쓸한 현실로 이야기된다. 그럼에도 계속되는 영어유치원 선호 현상에는 “영어는 어린 시절에 익혀야 하고, 일단 하면 평생 좋다”는 믿음이 있다. 영어유치원 출신 성인 100명 중 44명이 “영어유치원 교육이 영어능력에 도움을 줬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했다. ‘그렇지 않다’는 응답자는 23명이었다. 48명은 자녀나 주변 지인에게 영어유치원 교육을 ‘권유하겠다’고 했다. ‘권유하지 않겠다’는 응답자는 그 3분의 1인 16명이었다. 학부모들에게 영어유치원 자녀 교육 만족도를 물었을 때 ‘만족한다’는 응답은 70명, ‘만족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2명이었다.
부모의 자녀 학력 신장 기대가 투영된 생애 초기 유아들의 사교육은 첨예한 논쟁적 주제로 다뤄진다. 경제력 있는 이가 훌륭한 ‘명품’을 소비하는 행위처럼 누가 뭐라 할 수 없는 투자라는 시각이 있고, 유아들이 부모 재력 때문에 출발선부터 차이를 겪는 불평등이라는 반론도 있다. ‘명품론’과 ‘불평등론’이 부딪힐 때도 부모 교육열은 계속됐고 영어유치원은 점점 많아졌다.
헌법재판소는 2000년 과외교습을 금지하는 내용의 학원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제3조를 위헌으로 결정했었다. “학부모 각자가 자신의 인생관·교육관 및 경제력에 따라 자녀의 사교육에 대해 어느 정도 부담을 할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하고 이에 대한 책임과 위험을 지게끔 하는 것이 헌법의 정신에 부합한다”고 헌재는 밝혔다. 헌재는 이때 벌써 “사교육의 영역에 관한 한, 우리 사회가 불행하게도 이미 자정능력이나 자기조절능력을 현저히 상실했다”고 했다.
이슈&탐사팀 이경원 이택현 정진영 박장군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