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태어나 열 살 나이로 알려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딸 김주애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작년 11월 18일 대륙간탄도미사일인 화성-17형 발사 이후 처음 등장한 김주애는 김정은이 참여하는 주요 행사에 동참하고 있다. 세계 언론이 주목하고, 학계에서도 후계자 여부로 논쟁이 펼쳐진다.
그러나 실상 김주애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주애라는 이름조차도 북한을 수차례 방문한 미국 프로농구 괴짜 선수 데니스 로드맨이 2013년 9월 영국 가디언과 한 인터뷰를 통해 알려졌다. 북한 매체는 아직도 김주애라는 이름 대신 “사랑하는” “존귀하신” “존경하는” 자제분으로 부른다. 정보가 지극히 제한되는 북한 특성상 김주애에게 초점을 맞추기보다 북한 체제 속성을 이해하는 것이 후계 여부에 보다 명확한 관점을 제공해줄 것이다.
일본 도쿄대 와다 하루키 교수는 북한을 ‘유격대 국가’로 부른다. 1930년대 김일성의 빨치산 경험이 현대사에 접목되면서 북한 건국의 역사가 되고 이를 끊임없이 재생산해 정통성을 부여한다. 지난달 8일 북한 열병식에서도 빨치산을 재현한 7연대 상징종대가 선봉에 섰다. 빨치산은 혁명 가족의 전통과 지도자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으로 상징화됐다. 인류학자 이문응은 이를 ‘가족국가’로 명명한 바 있다.
북한은 김일성을 “어버이”로 부르고 나라 전체를 하나의 가족으로 묘사한다. 유교에서 강조하는 충과 효가 반영돼 일부 학자는 북한을 ‘유교국가’로도 부른다. 유교적 전통을 활용해 사회를 통합하고 정치적 단합을 모색한다. 유교는 보수적이고 관념을 중시해 실용을 배격한다. 북한이 지금까지도 주창하는 “나에게서 그 어떤 변화도 바라지 말라”는 구호의 근거다(권헌익·정병호, ‘극장국가 북한’).
김일성을 이은 후계자는 창조된 빨치산 서사로 백두혈통의 정통성을 부여받고 출범했다. 더불어 지도자에 대한 충과 효가 강조되는 가족 형태의 국가를 이어받고 있다. 그러나 세습을 받더라도 자신만의 업적과 철학이 필요한 것은 일인지배 권위주의 체제의 보편적 특성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김일성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후계자는 일정 시점 김일성을 대체해야 살아남는 숙명이다.
김정일은 김일성을 건국의 시조로 삼고, 빨치산 저항 역사를 선군(先軍)으로 재구성했다. 김정은은 핵 질주를 통해 선핵(先核) 역사를 창출한다. 그렇다면 김주애는 무엇을 써나갈 수 있을까. 빨치산이 상징하는 군사 투쟁, 가족국가로 대변되는 어버이의 이미지, 유교국가 특성인 남성 중심 사회 등을 이어받기에는 모두 한계가 있다. 김일성만을 바라며 충과 효를 다한다는 ‘유훈정치’만으로 권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김정은이 만든 화성-17형과 같은 ‘과시의 정치’가 필요하다. 열 살짜리 여아가 감당할 수 없는 버거운 책무다. 김정일과 김정은은 모두 20대 초반에 후계 물망에 오르고 당·군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
지난 2월 열병식에서 끊임없이 울렸던 “백두혈통 결사보위”가 김주애 등장을 설명한다. 누가 되든지 김일성 일가의 4대 세습은 분명하므로 대를 이어 충성하라는 것이다. 또 다른 의미는 작년 11월 화성-17형 발사 후 “후대들의 밝은 웃음을 위하여” “강위력한 정의의 붉은 보검”을 만들었다는 선전에서 알 수 있다. 김정은은 주애를 내세워 백두혈통 정권에 충성을 다짐하고, 핵무기에 대한 긍정 담론을 확산하며, 미래세대와 교감하는 자애로운 아버지 이미지를 연출 중이다.
그러나 후계자 논란에서 한발 떨어지면 북한 체제에 내포된 전근대성이 보인다. 또한 한반도에 통일된 근대국민국가를 속히 완성하고 21세기형 국가로 진화해야 하는 한국의 숙제도 부각된다. 이래저래 심란하다.
박원곤(이화여대 교수·북한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