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부천 ABC교회(박에스더 목사)는 그 흔한 옥외 간판도 없다. 지난해 우여곡절 끝에 찾은 새 예배당이니 한껏 자랑하고 싶을 만도 한데 애써 존재감을 숨긴 듯 보였다. 박에스더(52) 목사가 교회의 정체성을 설명하니 비로소 이해됐다.
박 목사는 “올해 초 신년 주일 예배와 함께 입당 예배를 드렸다”며 “우리 교회는 성도들이 잠시 쉬었다가 육체적 충전과 영적 회복을 동시에 경험하는 ‘주유소’ 같은 교회”라고 정의했다.
그가 두 개의 직함을 가진 사연은
목사와 한국진로적성센터 센터장. 박 목사가 가진 두 개의 직함이다. 그는 여성이면서 이중직 목회자라는 데서 오는 편견과 차별에 맞서 고군분투 중이기도 하다.
어려움은 있었지만, 박 목사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끝까지 지켰다. 그의 사명은 미국 등 서구권 국가처럼 한국인에게 최적화된 진로적성 검사를 통해 기독인들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맞게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다.
그 결과물이 2004년 국내 최초로 개발한 한국형 진로 적성 검사 ‘옥타그노시스(Octagnosis)’다. 일본어로도 번역돼 배포되고 있는 이 검사는 기업과 학교,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사실 창조 원리에 근거해 만들어졌다.
26일 교회에서 만난 박 목사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형상을 따라 각기 다른 인간을 창조하셨듯 형상의 패턴을 따서 검사를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옥타그노시스 검사의 활용범위는 넓다. 주 업무인 진로 상담을 할 때도, 성도들을 목양할 때도 이 검사의 도움을 받는다. 애초 진로 적성 검사를 개발한 이유도 전도용으로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무엇보다 검사의 주 대상으로 삼은 건 청소년·청년세대였다. 젊은 세대를 향한 비전과 열정을 간직하고 있어서다. 왜 하필 다음세대일까. 박 목사는 다음세대가 ‘진로 사각지대’에 놓인 세대라고 진단했다. 그와 상담을 나눈 청년들의 입에서 공통으로 나온 고민도 ‘미래의 불확실성’이었다. 이는 곧 신앙과도 직결되는 문제였다.
청년의 회복은 곧 교회학교의 회복
박 목사가 다음세대에 주목한 건 그들이 침체된 한국교회의 구원투수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부터 청년 사역에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박 목사가 생각해낸 묘안은 성경을 쉽고 재미있게 가르치는 것이다. 설교를 전할 때도 청년들이 실제 삶에서 접목할 수 있는 친근한 주제와 영화, 드라마 등 공감을 끌어내는 도구를 사용했다.
그러면서 청년 살리기의 방법을 소개했다. 시작은 신앙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는 것부터다.
박 목사는 “실제 20~30대 청년들은 자신의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아 혼란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청년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그들이 누구인지를 알려주고 자기 이해를 돕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다음세대인 청년이 또 다른 다음세대인 청소년을 끌어가는 구조도 생각했다.
“가정과 학교에서도 한계가 있는 신앙교육의 역할을 교회학교로 되찾아 오려고 한다”면서 “청년은 걸어 다니는 교회학교 교사다. 청년의 역할이 중요한 시대”라고 말하는 박 목사의 표정은 비장하기까지 했다.
현재 박 목사는 남편인 김진 목사(라이프교회)와 교회학교를 살리기 위한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
주유소 같은 교회의 역할은
박 목사는 다음세대 사역을 하면서 교회의 역할도 고민하고 있다. 이 고민은 ‘교인 수와 규모는 무의미하다’는 ABC교회의 정체성과도 맞닿아 있다. 교회를 찾는 90% 이상의 성도들은 다른 교회에서 상처를 받거나 가나안 성도로 긴 시간 교회를 떠나있던 사람들이다.
이들을 위해 교회는 쉬어가며 재충전할 수 있는 주유소가 돼 주려고 한다.
ABC교회 성도 중엔 박 목사의 진로적성센터 센터장이라는 직함을 보고 상담을 받으려고 방문한 경우도 많다. 이들은 상담을 받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과거 교회에서 받은 상처를 회복했다. 이후 본 교회로 돌아가거나 더 큰 교회로 옮겨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쉬움은 없다. 이들의 징검다리 역할이 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박 목사는 “목회 초기 교회를 주유소처럼 생각하고 떠나는 성도들에게 서운하기도 했었다”면서 “성도들이 재충전하는 쉼터 역할을 하는 것도 목회 일부라고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시선은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교회 주변 100리 안에는 아픈 자, 방황하는 자, 비관하는 자가 없어야 한다는 자신의 목회 철학이자 로마서 8장 29절 말씀에 따랐다.
“목회하면서 실수할 수도 있고 두려움에 직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예요. 결코 두려워하거나 움츠릴 필요가 없다는 뜻이죠. 우리가 주님의 선한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시면 하나님도 선하게 이뤄가지 않을까요.”
부천=글·사진 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