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다른 곳에 쓰이는 통일 기부금… 이젠 국고 환수 없이 쓴다

입력 2023-03-03 04:08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2일 정부서울청사 별관 대강당에서 열린 '통일부 창설 54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통일부는 실향민·이산가족 등 민간 기부자가 통일 관련 업무에 쓰라고 내놓은 기부금을 적립해 놓고 쓸 수 있도록 남북협력기금법을 개정하는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통일부는 전문가 의견을 수렴한 뒤 개정안 관련 내부 법률 검토를 마치고, 현재 관계부처와 협의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2일 정부입법지원센터 홈페이지 등에 따르면 통일부는 남북 교류와 협력을 지원하기 위한 기금 설치 및 운용·관리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 남북협력기금법을 일부 개정키로 했다.

이번 법 개정은 남북 교류 활성화를 비롯해 통일 준비 단계, 나아가 통일 이후에 필요한 재원을 민간으로부터 기부금 형태로 받은 뒤 목적에 맞게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현재 남북관계는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발사 등 무력도발과 대남 적대 기조로 교착상태에 빠져 있지만, 이번 개정 작업을 통해 장기적 관점에서 통일 여건을 조성하겠다는 것이 통일부의 구상이다. 또 정부의 일관된 남북 교류 의지를 천명하고, 통일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환기하려는 의도도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개정안과 기존안의 가장 큰 차이는 민간에서 통일 관련 목적으로 써 달라며 기탁한 기부금을 별도로 마련한 ‘통일준비계정’(가칭)에 넣어두고 기간 제한 없이 해당 목적으로 쓸 수 있는 길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이 같은 기부금이 들어오더라도 남북협력기금이 단년도 편성 방식으로 운용돼 온 탓에 최장 1년 뒤엔 전액 국고로 귀속됐다. 남북관계가 꽉 막혀 있는 상황에서는 통일 관련 기부금을 사용할 수 없어서 1년이 지난 뒤 국고로 귀속되던 관행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실향민이 ‘고향에 학교를 세워 달라’며 기부를 하더라도 현행 제도에선 1년이 지나면 기금 총액으로 흡수되면서 다른 목적으로 쓰일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법 개정을 통해 용처가 분명한 기부금 계정을 따로 만들어 관리할 경우 민간 기부금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통일부는 홈페이지에 ‘민간 기부금을 재원으로 하는 기금 계정 신설 근거 마련’ 등을 입법 주요 내용으로 공시했다. 통일부는 지난 1월 27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했던 올해 업무보고에서도 핵심 추진 과제로 ‘대내외 통일 역량 및 기반 강화’ 차원에서 남북협력기금의 민간 기부 적립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법 개정 작업은 이 같은 업무보고 계획에 따른 것이라는 게 통일부의 설명이다.

통일부는 남북협력기금법 개정안을 조만간 입법예고한 뒤 윤 대통령의 재가, 국회 제출 등 입법 절차를 진행할 방침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해당 법 개정에 대해 “관련 계획은 어느 정도 구체화돼 있다”며 “속도감 있게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신용일 기자 mrmonst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