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 기아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 2분35초짜리 영상이 올라왔다. 제목은 ‘스팅어에 바치는 헌사(A Tribute to Stigner)’. 스팅어는 2017년 5월 출시된 고성능 스포츠 세단이다. 고성능 차량 매니아 사이에선 인기였지만 판매 부진이 이어졌다. 100대가 채 안 남은 재고가 다 팔리면 단종된다. 더 이상 신차가 세상에 나오진 않지만 제조사가 헌사를 한다는 건 이 차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는 의미다. 지난달 25일 스팅어를 타고 서울 마포구에서 경기도 남양주까지 왕복 약 80㎞를 주행했다.
먼저 외관을 둘러봤다. 스포츠카를 닮았다. 차의 높이(전고)가 낮고, 매끈한 곡선이 바람도 미끄러질 것 같았다. 그릴이 좌우로 길게 뻗어있어 날렵한 느낌을 줬다. 공기흡입구(에어 인테이크)는 스팅어의 강력한 성능을 짐작케 했다. 하지만 디자인을 위한 것일 뿐 실제 공기 흡입을 하진 않는다. 뒷면의 테일램프는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이어져 있다. 깔끔하면서도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차량 이름 ‘Stinger’를 휘갈겨 썼다. 이탈리아 고급 브랜드 마세라티 로고와 글씨체가 비슷했다. 실내에 있는 원형 송풍구가 항공기 터빈을 닮았다.
주행을 시작했다. 이날 도심에는 차량이 많아 가다 서기를 반복했다. 코너를 돌 때 차가 반대편으로 거의 쏠리지 않았다. 시속 50㎞ 정도의 속도로 과속방지턱을 넘었는데 크게 덜컹대지 않았다. 차선 이탈 방지 시스템 등 주행 보조 기술도 민감하게 작용했다. 전반적인 주행감은 점잖다는 느낌이었다.
스팅어는 국내 양산차 가운데 가장 먼저 ‘GT’(Gran Turismo) 엠블럼을 달았다. ‘장거리 운전’을 목적으로 만든 고성능 차량을 의미한다. 오래 운전해도 불편하지 않을 승차감과 고속 주행 능력을 동시에 갖췄다는 의미다. 도심 주행에선 점잖았던 이 녀석의 고속 성능을 점검할 차례다. 주행모드를 스포츠로 바꾸자 계기판과 내비게이션이 ‘이제 질주할 준비가 됐다’는 듯 빨간색으로 변했다. 가속 페달 위에 발은 얹자 스팅어가 앞으로 튀어나가려고 꿈틀대는 게 느껴졌다. 가속 페달을 꾹 밟았다. 등이 시트에 척 달라붙으면서 차량이 스프링처럼 튀어나갔다.
계기판에 찍힌 속도를 보고 놀라 여러 번 속도를 줄였다. 앞차의 꽁무니가 순식간에 눈앞에 들어왔다. 스티어링휠(운전대)을 돌려 차선을 바꿨다. 차 머리가 우왕좌왕대지 않고 사뿐하게 옆 차선에 자리 잡았다. 고속에서도 흔들림이 적다. 강한 차체, 전자제어 서스펜션, 낮은 무게중심, 접지력 높은 타이어 등이 힘을 합쳐 차량이 도로를 움켜쥐고 달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 스팅어는 출시 당시 제로백(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에 도달하는 시간)이 4.9초로 국산차 가운데 가장 빨랐다. 개발 초기부터 서킷 주행을 염두에 뒀을 정도다.
풍절음(차체를 스치는 바람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빠른 속도로 달리면서도 조수석 동승자와 조곤조곤 대화가 가능했다. 다만 ‘부릉’하는 엔진소리가 크지 않다는 점은 고성능 차량에게는 단점으로 느껴졌다. 배기음은 다이내믹한 드라이빙을 맛보려는 이들에게 양념 같은 거다. 스팅어의 엔진 소리는 운전자의 귀와 가슴을 설레게 하는 수준은 못된다. 뒷좌석의 가운데 턱이 거의 무릎 높이까지 올라와 있어 3명이 타기는 버겁다.
승차감 좋은 세단과 스피드를 즐길 수 있는 ‘펀카’를 동시에 느끼고 싶은 소비자에게 스팅어는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지만, 단종 직전이라 구매는 어렵다. 이 정도 성능을 갖춘 5000만원 정도의 차량인데 판매량이 저조했다는 게 선뜻 믿기지 않았다. 기아 스팅어 개발 부서가 마케팅 부서를 원망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