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 중에 ‘진심감별사’가 있다. 그런 직업이 있던가? 그런 직업은 없다. 이 진심감별사로 말하자면 “나는 들으면 딱 알아. 진심인지 아닌지”라며 확신에 차 있는 인물이다. 사이비 종교에 심취해 있거나, 어딘가 좀 아픈 사람은 아닌가 걱정될 수도 있겠다. 다행히도 그런 케이스는 아니다.
이 사람은 올해 여덟 살이 된 어린이다. 이 어린이는 특히 ‘사과’의 진심 여부를 감별하는 데 자신감을 갖고 있다. 나름의 비법이 있단다. 비기를 물으니 입술을 일자로 만들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혼자만 간직하려던 감별사에게, 읍소 끝에 비법을 전수하였다. 비법은 ‘잘 듣는 귀’. 사과하는 사람이 어떤 종결어미를 선택했는지, 사과의 마무리에 어떤 억양을 담아냈는지를 들으면 바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식이다. 친구의 색연필을 빌려 쓰다가 실수로 부러뜨렸을 때, 사과의 방식은 크게 둘 중 하나다. 사과하는 어린이가 목소리를 가라앉히고 누그러뜨린 음성으로 종결어미의 끝을 길게 끌며 “미안해…”라고 한다면, 이 사과는 진심이란다. ‘그렇구나. 뭐 대단한 것은 없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진심이 아닌 사과는 뭐가 다른지 물었다.
감별사에 따르면 진심이 아닌 사과는 대개 이렇다. 일단 목소리 톤이 ‘솔’이나 ‘라’ 정도로 올라간다. ‘어린이라면 모름지기 잘못이라는 걸 했을 때 즉각 사과를 해야 마땅하다’는 사회통념에는 따르기는 하겠지만, 고분고분하게 구는 게 마뜩잖다며 자존심을 꾹꾹 담아낸 톤이다. 그렇게 소리를 한껏 끌어올려서 “미안?!”이라고 간결하게 한마디 한다면, 진짜 사과가 아니라는 게 진심감별사의 말이다. 여기서 포인트는 물음표다. ‘라’ 정도 높이의 음성에 의문문 억양으로 짧게 치고 빠지는 것. 억양은 ‘미’보다 ‘안’이 더 높아야 한다. 이런 “미안?!”에는 진심이 없는 게 분명하다고 감별사는 단언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미안?!”이라고 해놓고도 ‘억지 사과’를 했다는 사실이 못내 분하고 억울한 때, 잘못을 결단코 인정하기 싫을 때, 형식적인 사과의 결정판으로 미안 뒤에 부연이 하나 더 붙는다. 바로 이것, “미안?! 됐지?!”다. 영혼 없는 “미안?!” 뒤에, 사과를 얻어내서 퍽이나 좋겠다는 의미를 담아 “됐지?!”까지 붙이면 명명백백 가짜 사과라는 게 진심감별사의 말씀이시다.
그러고 보니 감별사는 “사과부터 해야지”라고 했을 때 “미안?!”이라고 한 적이 많았다. 오호라, 이렇게 그간의 본심을 고백하다니…. 비법 공개 강의가 끝난 뒤 이 어린이는 “미안?!”이라고 거짓 사과는 할 수 없게 됐다는 게, 이 에피소드의 뜻밖의 결말이다. 앞으로 “미안?!”이라고 할 때마다 “진심을 담아서 해야지”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러게 비법은 함부로 공개하면 안 되는 것이다.
어린이 진심감별사 얘기를 듣다가 어른들의 세계를 돌아보니 뒷골이 서늘해진다. 어른들은 실수가 아니라 치명적인 잘못을 해놓고도 “미안?!”이라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지위가 높고 권한이 많고 권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미안하다’는 말을 모른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는 77년이 넘도록 사과를 받지 못했다. 이태원 10·29 참사 피해자 가족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도 제대로 된 사과다.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학교폭력 문제도 진심 어린 사과가 해결의 시작이 돼야 한다. 사과의 진심을 감별하고 용서할지 말지는 피해자의 몫이지만, 실수였든 잘못이었든 가해자는 사과를 해야 마땅하다.
문수정 산업2부 차장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