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부흥은 길 건너편에서 온다

입력 2023-03-04 04:02

설교 강단에 선 젊은 목사는 편안한 복장이 인상적이었다. 라운드 티셔츠 위에다 단추를 푼 긴 셔츠를 받쳐 입고, 흰색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시종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거나 빼면서 강단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메시지를 전했다. 이날 설교 주제는 ‘사랑의 실천’이었다. 로마서 12장을 중심으로 한 설교 영상에서는 2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사랑’이라는 단어가 마흔 번도 더 나온 것 같았다.

설교 말미에서 그는 이런 권면과 기도로 마무리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면 우리도 (거짓이 아닌 진짜) 사랑을 베풀 수 있습니다. 당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꼭 경험하십시오. 그 사랑을 경험하기 전에는 여기를 떠나지 마십시오. (당신의 상처를) 모두 다 쏟아놓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예배는 끝났고, 강사 목사는 떠났다. 학생들은 교실이나 기숙사로 돌아갔다. 강당에는 20명 정도가 남아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들은 서로만이 느낄 수 있는 깊은 영적 체험을 하게 된다. 그들은 그런 느낌과 경험과 상황을 스마트폰을 통해 SNS로 전하기 시작했다. 발길을 돌렸던 학생들과 교수, 직원들이 다시 예배 장소인 강당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함께 뜨겁게 기도하고 찬양하며, 예배를 이어갔다.

지난달 8일 미국 켄터키주 윌모어에 있는 애즈베리대학교 휴즈 강당에서 촉발된 이른바 ‘애즈베리 리바이벌(Asbury Revival)’이 시작된 장면이다. 이날부터 지난달 말까지 현장에서는 매일같이 기도회가 열렸다. 소문이 퍼지면서 미국 전역에 이어 캐나다와 싱가포르 등 해외에서까지 신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을 보려고 이곳에 인파가 밀려들었다. 인구 7000명밖에 안 되는 시골 마을에 2만명 넘는 사람들이 몰리다보니 CNN 등 미국 주요 언론사들도 이 현상을 뉴스로 다루기도 했다.

SNS 등에 올라온 현장 목격담에선 애즈베리 리바이벌에서 나타나는 몇 가지 특징이 눈에 띈다. 우선 자발적이라는 것이다. 이 학교에서 신약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김하진 목사는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이곳을 찾은 많은 이들과 섬기는 이들에게서 자발성이 느껴졌고, 하나님을 향한 갈급함이 있었다”고 말했다. 평온하고 차분한 분위기도 눈길을 끌었다. 김 목사는 “가장 뚜렷하고 지속적으로 느껴진 부분은 평온하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 하나님께 집중하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일상성도 접할 수 있다. 애즈베리 리바이벌을 촉발시킨 건 특별한 집회나 대형 행사가 아니었다. 대학 채플 강사로 나선 목사가 그 흔한 ‘사랑’을 주제로 30분도 안 되는 설교를 한 뒤에 몇몇이 남아 기도하던 중 벌어진 일이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애즈베리대학교에서 벌어진 이런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1905년과 1908년부터 1921년, 2006년 등 총 8차례나 경험했다. 모두 다 자발적이면서 일상적인 가운데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이 때문인지 몰라도 학교 주변에서는 “부흥은 길 건너편에서 온다”는 말이 또다시 회자되고 있다고 한다.

현장을 지켜본 이들은 영적으로 목말라 있는 젊은세대의 갈급함을 봤다고도 했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 소식과 소문이 그치지 않고, 예기치 않은 지진 같은 재난으로 수만명이 죽고 다치고 절망하는 상황에서 마주하는 영적 공허감을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간에 경험할 수밖에 없다. 영적인 허기와 공허함을 술과 마약과 쾌락으로 채우고 또다시 추락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상황 속에서 평범한 강사 목사가 던진 “하나님의 ‘찐사랑’을 느껴보라”는 메시지에 청년들은 확 꽂혔을지 모른다. 태평양 건너 미국의 한 미션 스쿨에서 벌어진 희한한 사건은 멀리서 부흥을 찾고 있는 우리에게 또 다른 메시지도 건넨다. 부흥은 길 건너편에서 온다.

박재찬 종교부장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