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리자는 글로벌 캠페인 RE100의 이행 수단으로 급부상한 ‘직접 PPA(Power Purchase Agreement·전력구매계약)’ 사업이 좌초 위기에 놓였다. 한국전력공사가 산업용 전기요금보다 50% 이상 비싼 PPA 전용 전기요금제 도입을 밀어붙이면서다. PPA 요금제를 적용하면 대기업은 연간 60억~100억원, 중견기업은 10억여원의 비용을 추가로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다.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지난달 13~21일에 RE100 참여 기업과 협력사 321곳을 대상으로 PPA 요금제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 86.5%는 ‘손해가 발생한다’고 답했다. 제조업체 10곳 중 7곳은 PPA 요금제가 ‘심각한 부정적인 악영향을 준다’고 지적했다. 손해 발생 시 대응으로는 ‘검토 보류’(62.2%), ‘추진 중단’(24.3%), ‘계약 파기’(5.4%) 등을 꼽았다. 사실상 ‘직접 PPA 사업’을 접겠다는 뜻이다. 최규종 대한상의 그린에너지지원센터장은 2일 “민간 기업들이 장기적 관점에서 직접 PPA 사업에 관심을 갖고 뛰어들었다가 PPA 요금제 부담 탓에 계획을 전면 수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직접 PPA는 기업에서 한전의 전력시장을 통하지 않고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와 계약을 맺은 뒤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조달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9월 첫 발을 디뎌 시행 초기다. RE100 이행 수단이 부족했던 기업 입장에서 한전이 중개하는 제3자 PPA와 달리 직접 발전사업자와 1대 1로 전력을 거래할 수 있어 큰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한전이 지난해 12월 예고없이 PPA 요금제를 신설하면서 분위기가 급격하게 가라앉았다. 설문조사 응답 기업의 92.2%가 PPA 요금제를 시행할 경우 RE100 참여 자체를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PPA 요금제는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와 PPA 계약을 맺은 기업들이 부족한 전력을 한전으로부터 받을 때 적용하는 요금이다. 기업들은 PPA 사업을 활용하더라도 태양광·풍력·수력·지열 등 PPA 발전원의 절대용량이 적은 데다 발전량 변동성이 큰 만큼 한전에서 부족 전력을 충당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전에서 만든 PPA 요금제의 기본요금은 ㎾당 9980원으로 산업용(6630원)보다 3350원(50.5%) 높다. 시간대별로 중간부하 시간대와 최대부하 시간대 요금을 각각 9.3%, 8.7% 낮췄지만 생산공장이 24시간 돌아간다는 걸 감안하면 무의미한 요금 책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경부하 시간대 전력 사용량이 많고 최대 수요 전력을 기준으로 매기는 기본요금 부담이 큰 대규모 사업장일수록 PPA 요금제 도입에 따른 타격이 크다. 반도체, 석유화학 등 수출 주력 산업군이 여기에 해당한다.
또한 한 기업이 재생에너지를 1%만 사용해도 사용전력 전량에 PPA 요금제를 적용하는 것도 문제다. 재계 관계자는 “사용 비중에 상관없이 획일적으로 PPA 요금제를 적용한 속내는 한전이 그만큼 팔지 못한 전력을 기업에서 돈으로 충당하라는 것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대한상의는 PPA 요금제를 철회하거나 적용 기준을 합리화해 달라는 내용의 개선요청 건의서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에 전달했다. 조영준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원장은 “탄소중립 이행, 기후변화 대응 차원에서 미국과 유럽은 자국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친환경 산업 지원법을 앞다퉈 마련하고 있다. 재생에너지를 선도적으로 활용하려는 기업에 부담을 주고 주력산업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PPA 요금제는 재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혜원 기자 kime@kmib.co.kr